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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y 04. 2022

너를 보면 긴장하게 돼

 <나의 해방일지>에서 ‘추앙’이란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텅 빈 기분이 들었다. ‘사랑’과 ‘추앙’ 사이의 간극. 나에게 ‘추앙’은 아직 어색하다. 누군가에게 추앙한다고 추앙해달라고 말하지 못할 자신이 있다. 지금 6화를 보고 있는데 볼수록 ‘사랑’과 ‘추앙’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고 있다. 그리고 표정보단 자막에 집중하며 보고 있다. 또 나를 텅 빈 상태로 만들 그 무엇은 무엇일까 기다리고 있다.


 “너를 보면 긴장하게 돼”란 대사가 나왔으면 한다. 긴장했으면 좋겠다. 그런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설렘보단 긴장하는 사이라면 더더욱 좋겠다. 같은 떨림이지만 그 떨림을 설렘보단 긴장으로 인식했으면. 그래야 뿌듯하지 않을까. 설레는 일을 해서 얻은 성취감은 늘 그렇듯 뿌듯하다. 긴장되는 일을 해서 얻은 성취감은 그냥 뿌듯하진 않다. 자랑하고 싶어진다. 내 옆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진다. 강남역 옥외광고판에 광고하고 싶어진다.


 여자친구에게 “너를 보면 긴장하게 돼”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일까. 적어도 ‘얘가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설렌다고 말하면 ‘얘가 뭐 잘못한 게 있구나’라 의심할 텐데... 긴장감을 갖고 하는 연애는 그만큼 책임감이 있을 것이다. 책임감 없는 긴장감은 못 봤기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곧 도착할 새로운 장소에 만족할까란 묘한 긴장감은 일종의 책임감이다. 좋은 관계를 위한 책임감. 긴장감은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그냥 친구에게 “너를 보면 긴장하게 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 친구 사이의 긴장은 어색함에 가까울 것이다. 아직 어색한 그 친구와는 적정한 선을 지키며 지내고 있어 언젠간 그 선을 밟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그런 마음이 긴장감이다. 아직 서로에게 ‘나’를 드러내지 않은 사이.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편하지 않은 사이. 말이 적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불안한 눈동자.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 안 해도 돼”라고 했다. 더 불편해졌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포기하고 결국 고개를 돌린다. 차라리 그게 편했다.


 다시. <의 해방일지> 중 이런 대사가 있었다. “쓸데없는 말인데 들어줘야 되고 나도 쓸데없는 말을 해 내야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해 내야 되는 거 자체가 중노동이야.” 그래 중노동이었으니까 힘들었던 거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힘을 생산하는 것도 일이잖아. 만나서 멍 때릴 수 있는 친구랑은 중노동이 필요 없으니까. 긴장감이 중간에 서 있는 그 친구와도 언젠간 긴장감 없는 편안함에 안착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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