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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pr 06. 2022

완전한 벚꽃이라 완벽한 봄

 빠르게 변하는 서울이지만 거리가 벚꽃으로 물드는 건 늦다. 늦어서 좋다. 미리 설렐 수 있으니까. 경주로 놀러 간 친구 인스타엔 벚꽃과 목련이 만개했다. 봄을 맞이하러 간 친구의 눈은 꽃으로 가득했다. 덩달아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아직 서울은 서늘하지만 다음주 정도면 벚꽃이 다 피겠지, 한강을 가겠지, 사진을 찍겠지, 설렘을 기대한다.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에선 만개했다.


 벚꽃은 자신의 모습을 살짝만 비춘다. 사람들이 자기를 질리지 않게 할 그 타이밍을 알고 있다. 봐도 봐도 예쁜 벚꽃이 어떻게 질릴 수 있겠느냐만 어쩔 수 없다. 만개한 벚꽃은 찰나의 순간만 변하지 않는데 우린 그 찰나만을 기억하곤 한다. 변하는 건 시드는 순간일 벚꽃은 사람들의 만개한 웃음을 뒤로하고 시들 준비를 한다. 시드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바라보는 벚꽃은 죽은 게 아니다. 핑크빛 거리를 만들어 흡족하는 벚꽃은 노련한 것이다. 여전히 벚꽃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기에.


 그렇게 벚꽃은 봄을 상징하게 된다. 모두에게 핑크빛을 선물한다. 핑크빛 봄, 핑크빛 사랑, 핑크빛 외로움. 추운 겨울 움츠러진 사람을 꽃잎 피듯 피게 한다. 앙 다운 입술을 활짝 웃게 한다. 거리를 걷고 싶게 한다. 뭐라도 하게 한다. 핑크색이길 바라지만 아직 애매한 모든 것들에 갈망을 품게 한다. 이렇게 보면 봄은 생동감이 생기는 계절이다. 운동하기 딱 좋은 날, 무엇을 배우기 딱 좋은 시기,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간. 벚꽃처럼 짧지만 완벽한 계절이다.


 곧 완전한 봄으로 바뀔 건데 나도 뭔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삶의 지향점을 생각해 볼 시간이 왔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게 나에겐 작은 목표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마치 대학에 붙었고 놀 거 다 놀아서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대2병 걸린 무력한 대학생이 되었다. 돈, 명예, 가족, 직업이 삶의 지향점이 아닌 어른이 있다면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을까. 벚꽃처럼 확신있는 그분의 지혜를 살피고 싶다. 아님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목표 없이 사는 사람들이 정답일 수도 있을까.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해졌다. 무턱대고 걷는 시간이 간절해졌다. 마침 벚꽃이 필 것이고 아름다운 거리에 여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걸어야겠다. 성찰의 끝을 갈 수 없더라도 체력의 끝이 오는대까지 걷고 또 걸어봐야겠다. 내가 고민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민이 고민을 위한 고민인 건지 나를 의심하며 비장하게 걸어보자.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벚꽃을 말벗 삼아, 어떻게 완전한 꽃이 되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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