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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y 12. 2022

성게 같은 만남

 “삶의 즐거움 대부분이 시시해졌다. 안 먹는 반찬 같아진 지 꽤 됐다. 사교계 게임, 이런 게임, 저런 스포츠 (중략) 예전에 꺄르르 재미있어하던 것에 통 젓가락이 안 간다.”


 팀에서 정기구독한 <chaeg>이란 잡지에서 읽었고 그대로 메모장에 옮겼다. 즐거움이 시시해졌다는 포인트엔 공감하진 않았다. 아직은 즐겁다는 의미겠지. 안 먹는 반찬과 시시해진 삶의 즐거움을 빗댄 것이 재밌었고 이런저런 활동들에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는 센스 있는 마무리가 감탄스러웠다. 단지 그래서 그랬다. 적어도 아직은, 삶에서 즐거움이 많아야 하지 않나.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에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의무감에서 오는 즐거움만이 시시하다고 느끼며 생동감 있는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어린 동심이 머물었던 자리가 어딘지 더듬어보면서 내적 모험심을 촉발시키는. 적어도 아직은, 그런 사람이어야 어울리지 않을까.


 지금 나에게 즐거움은 만남에서 온다. 새로운 만남보다는 익숙한 만남. 그렇다고 뻔한 만남은 아닌 만남. 한정적인 대화 범주에서 겉도는 일종의 토익스터디 같지 않은 그런 만남. 성게 같다. 뜬금없지만 성게 같은 만남이라 하고 싶다. 모든 색을 담고 있는 검은색 외향처럼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듬직함. 어색하지 않은 들쑥날쑥한 배열의 뾰족한 가시로 자기보호를 하는 성게처럼 대화 흐름을 이어가거나 무시하거나 화제를 바꾸는 등 규칙성이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이다. 오로지 자기의 즐거움이 우선인 친구들이라 이런 이기적인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게 성게 같은 만남이다.


 만나고 있는 친구들은 각자의 뾰족한 가시 속에 즐거움이 목적인 방향성을 내포한 듯하다. 네가 잘 될 수 있게 조언이나 충고가 아닌, 잔소리는 더더욱 아닌 말. 서로 깊숙이 찌르지 않게 조절할 수 있다. 약간의 통증이 통찰이 될 수 있게. 지압판을 밟아서 건강해지듯 통증이 자극제가 되어 더 나은 길로 가야 하니까. 그 친구가 통찰하는 순간까지 조금씩 조금씩 통증을 가하고 당한다. 우린 서로 잘 되길 바라는 수평선 모양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즐거움의 무게는 가볍다. 어쩔 땐 휘발성이다. 지금 이룬 꿈들은 한참 전에 내가 즐겁기 위한 목표였다. 나중에 잘 살기 위해서 이루어야 할 목표이자 꿈.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엔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섰지만, 오로지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기다렸다. 예전 목표를 이루어낸지 몇 달 후, 즐거움이 휘발되었다. 뜨겁지 않은 지극히 평범해진 열정의 온도로 인해 즐거움은 휘발된 것이다. 표정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나. 사막처럼 건조해졌고, 조금만 밟아도 아스라졌다.


 다행히 사막은 축축해져 견고해졌다. 갈증을 머금고 살고 있었는데 마른침이라도 여러 번 삼키고 억지로 삼켰다.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예전에 내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침을 삼켰다. 하고 싶은 게 생각났다. 앞으로 즐겁기 위해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즐거울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그 즐거울 일을 이룬 다음은 아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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