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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un 30. 2022

나의 엑스 우산들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도 습관이 된다. 소나기가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챙긴 우산을 지하철 선반에 놓고 내려도 심장이 철렁하지 않는다. 습관이 된 듯 점점 덤덤해진다. 아끼는 우산이 아니라서는 아니다. 이미 우산이란 건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은 존재가 되었나 보다. 우산을 왜 계속 잃어버릴까? 장마처럼 우산이 꼭 필요할 때는 잃어버리진 않는다. 다만 소나기가 내리는 날. 오후에 올 비를 대비해 챙긴 우산은 짐덩이다. 바닥에 던져놓거나 선반에 올려두거나. 넷플릭스나 멍 때리다가 빈손으로 나온다. 밖에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일 때가 되어야 혼자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으로 유유자적 가고 있는 익명의 우산이 생각난다. 버려지지 말고 차라리 마침 우산이 필요했던 누군가에게 갔길 바란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진 않는다. 워낙 부가적인 물건들을 갖고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커플링 말고 다른 액세서리도 없다. 회사 갈 때도 가방 안에는 수첩, 펜, 지갑이 전부. 주머니엔 에어팟, 립밤, 손엔 핸드폰. 친구들 만나러 갈 땐 더 단출하다. 그래서 뭐가 없어지면 눈에 잘 띈다. 왼쪽 주머니에 항시 상주해있는 에어팟과 립밤은 이제 없으면 허전하다. 거실에서 TV를 볼 때 호두를 꽉 쥐는 것처럼 가끔 아귀에 힘을 준다. 에어팟만 있으면 뭔가 잡는 맛이 없었을 텐데 기다란 립밤을 포함하니 왠지 모르게 잡는 맛이 있다.


 장마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잃어버려진 걸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다. 야근을 마치고 사수와 택시를 타고 가다 내렸는데 빗소리와 다른 가벼운 충돌의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재질이 단단한 것과 부딪히는 소리. 바로 왼쪽 주머니에 손이 갔다. 예상대로 텅 비어있었다. 파동을 일으키는 빗방울들 사이에 하얀 에어팟과 립밤을 찾아봤다. 흐르는 빗방울의 종착지, 하수구가 있었고 더는 두리번 할 필요가 없음을 직시했다. 가로등 빛에 반사되는 하얀 립밤의 등장감. 어둑어둑한 하수구에 대비되어 너무나 잘 보였다. 에어팟은 어딨을까. 한참을 기웃거리며 봤지만 없었다. 다행히 에어팟은 택시에 흘린 것이었고 다음 날 재회하게 되었다.


 잃어버린다는 건 얼마나 억울한가. 누가 훔쳐 가기라도 했다면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을 원망할 수는 있겠지만 잃어버리고 나서 없어졌음을 깨달을 땐 참 허무하다. 다시 그 물건을 살 땐 괜히 다른 제품을 사게 된다. 허락 없이 사라졌으니까.  그 제품에게 드러내는 일방적인 서운함의 표현이다. 이런 서운한 표정 앞에는 당황함과 걱정하는 표정이 선행된다. 누군가가 짓는 그 표정을 보기만 해도 서늘함을 순간 공유하게 된다. 내 것을 잃어버린 듯 살짝 화까지 난다. 심지어 내가 사준 물건도 아닌데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그 공백이 뭔가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 그 허탈한 감정에 대해 겪어봤고 알고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주인 없이 덩그러니 걸쳐진 우산을 볼 때는 여러 감정이 스친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갔던 수많은 우산들이 생각남과 동시에 밖에 비가 오고 있지 않길 바랐던 대략 3,000원 정도 편의점 우산 가격에 버금가는 기대감도 잠시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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