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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ul 08. 2022

인생도 연금술이 되나요?

 사람은 기질이란 걸 지니고 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자들이 각자의 사상으로 그 기질에 논리성을 부여했었다. 동서양 서로 교류를 하지 못했던 시기더라도 그들이 분류한 기질의 방향성은 신기하게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자연의 결과물인 사람은 세상 단 하나만 존재하는 고유성을 지닌 채 태어난다. 흰 도화지 같은 그 기질에 연륜이 더해지고 여러 환경을 거쳐서 때가 묻는다. 어쩔 때는 도화지가 찢기기도 하고 종이접기처럼 접혀서 비행기 모양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도화지는 종이란 속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연금술사를 가장한 마법사가 아닌 이상 도화지를 찰랑거리는 얇은 금속 재질로 바꾸지 못할 것이다.


 기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철학자들이 그럴듯한 상상력 발휘하며 세분화시키긴 했지만 그들도 기질을 분류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분류만을 위한 분류일 뿐. 또한 기질의 유연성에 대해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언급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 유연성은 우연에서 기반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무대 장치의 신’과 같이 갑작스럽게 해결사가 등장해 주인공을 구원해주듯. 스파이더맨 1 주인공 피터 파커가 찌질한 학생에서 히어로로 변신시켜준 거미의 등장처럼 고유한 기질이 바뀌려면 신이거나 적어도 정체불명의 거미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우리의 인생이 고대 그리스 연극처럼 다이내믹하지는 않아서 그럴 수 있겠지만 나름 과감한 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인이 감행한 변화의 결과로 성격이 변했다던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던지 우린 나름 기질의 고유성의 변화를 감지했다고 설레발치기도 하는데 결국 요요처럼 본래 속성대로 돌아오게 된다. 한순간에. 어떤 계기로든 마지막 순간엔 본인만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변화를 하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어디선가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 믿는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건 지금 이 상태보다 더 개선된 방향성이 무엇인지 발견한 거니까.


 심적인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외적인 모습에 반영된다. 심지어 늙어가는 작용만 할 줄 알았던 얼굴도 내부적 요인에 반영되기도 한다. 간단하게는 피부에 돋아나는 여드름부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눈매가 매서워졌다거나 선해졌다거나 사람의 인상이 변하기도 한다던데 우리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사람의 성향 또한 연기는 할 수 있어도 원초적인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연기 자체를 거짓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삶에서의 연기는 살아남으려고 위장술을 쓸 수 있게 된 동물의 본성의 간절함에 가깝지 않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삶을 뒤흔들 만화적인 또는 신화적인 상황이 있을까. 기질을 표현하는 요즘식의 방식인 MBTI가 완전히 반대로 되는 상황이 올까.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재밌는 경험인 듯하다. 본인도 연기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정도의 다른 삶.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행복할까. 아님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ISFP의 삶을 살아갈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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