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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ug 24. 2022

오늘 점심 국밥 고?

;오점국고

 새롭고 낯선 경험이 즐비한 20살 새내기 시절. 음식에 대한 새로운 기억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선험적인 상차림의 구성. 3첩, 5첩, 7첩 반상 레이아웃을 띤 급식과 집 밥 범주에서 벗어나 오직 메인 음식 하나만 즐기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아예 새로운 식사 방법이 생기는데 사람들은 그걸 반주라 불렀다. 술 한잔하면서 먹는 음식. 술 마실 시간도 부족한 새내기 시절. 반주를 배웠고 국밥을 먹었다. 뜨거운 김을 내뿜는 국밥 옆엔 늘 차가운 땀을 흘리는 소주가 있었다.


 실내보다 야외가 좋았던, 전공보다 비전공이 좋았던 그땐. 해가 떠 있는 낮보단 본래 어두운 우주를 환히 비춰주는 밤이 더 좋았다. 밤처럼 솔직한 게 어디 있겠는가. 눈부신 햇살에 고개를 내려야만 했던 낮과는 다르게 고개를 당당히 들고 손가락질하며 하늘에 있는 별의 개수를 셀 수 있다. 헐벗은 우주처럼 밤이 되면 우리도 솔직해진다. 술 한 잔 더 곁들이면 피부는 점점 투명해진다. 투명색 피부는 온종일 유지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해가 존재감을 비출수록 투명색은 더 이상 보호색이 될 수 없다. 햇살처럼 약간의 노란빛을 몇 방울 떨어뜨린 듯한 피부로 돌아와야 한다. 그땐 늦은 새벽일지라도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국밥집에 간다. 술은 술로 깨야 한다는 선배의 말과 함께 해장을 위한 술을 마신다.


 국밥.  맛도 맛이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네이밍 아닌가. 한 끼 식사에는 모쪼록 밥이랑 국이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의 걱정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국. 밥. 이처럼 든든한 음식 이름이 더 있을까. 이름뿐만이 아니다. 돼지의 여러 부위가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고 순대까지 곁들어 있다. 고기는 채소와 같이 먹어야 한다는 걱정을 엿들었는지 파, 부추 등 심심하지 않게 고기와의 비율을 맞추고 있다. 음식에서만큼은 취향이 확실하게 갈리기에 국밥은 애초에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채 나온다. 본인의 기호에 맞게 드시라. 소금을 넣든, 새우젓을 넣든. 새빨간 다진 양념을 넣든. 외국에 써브웨이가 있었다면 한국엔 국밥이 있었다.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 국밥은 항상 학교 앞이나 집 근처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체인점에서 먹었다. 그저 국밥은 소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음식이란 생각이 컸을 때였다. 아직 진정한 국밥인이 아닌 흉내만 내고 있었다. 부산 출신인 여자친구는 국밥을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서도 근처 국밥 맛집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고 강남에 있는 파스타집 대신 수유역 골목에 있는 국밥집에 가곤 했다. 같이 부산에 내려가서는 도착하자마자 국밥 맛집으로 향했고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난 날도 다 같이 국밥을 먹으러 갔다. 소주 없이 오로지 국밥만 먹어도 충분했다.


 회사 앞 유명한 국밥집이 있다. 간판도 딱 맛집 포스를 풍긴다. 할머니 증명사진과 옛날 글씨체의 간판. 뭔가 너저분한 입구. 메뉴판엔 뼈해장국도 없는. 오로지 국밥과 순대만 파는 곳. 맛집의 아우라가 가득하다. 회사 동기 중에 국밥을 좋아하는 친구가 여럿 있다. 점심을 같이 먹는 날에 따로 생각나는 게 없으면 자연스럽게 국밥집으로 향한다. 회사라 그런지, 아직 연차가 쌓이지 않아서 그런지 소주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점심엔 후딱후딱 만들어지고 먹을 수 있는 국밥이 생각날 뿐이다. 국밥처럼 완전해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 다진 양념을 허연 국물에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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