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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Sep 01. 2022

기분조절잘해(?)

 기분파는 유전인가? 본능을 충실히 억누르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지우개로 지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분파의 체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흥적인 기분을 컨트롤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어머니께 기분파로 불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외치는 기분파란 단어에는 여러 뉘앙스가 있다. 주로 결혼기념일이나 생신 때 들을 수 있는데 꽃과 현금다발을 받은 그녀의 보조개엔 높은 톤의 기분파란 단어가 불렸다. “아유 정말~ 너네 아빠는 기분파야 참” 부모님이 트러블이 있어 선물이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땐 그녀의 앙칼진 눈빛에서 기분파란 단어가 뾰족하게 발사되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저렇게 기분파면 되겠어?”


 나에게도 유독 충동적인 순간이 있다. 쇼핑. 아이쇼핑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난 데이트를 주로 의류 편집샵이 밀접해 있는 곳에서 한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그녀 덕에 새로운 브랜드도 알게 되고 옷장은 채워진다. 눈에 걸리는 게 있으면 지갑을 열라는 게 아이쇼핑 아닌가. 쇼핑만큼 눈에 콩깍지가 잘 씌는 게 있을까. 몸에 걸치는 순간 이건 옷장에 없는 색깔이고 푸른 청바지랑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는 등 사야 할 명분을 만든다. 구경은 그녀가 하고 구입은 내가 하는 기이한 현상. 요즘은 가방을 살 생각인데 몇 번의 충동을 이겨내고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 가격의 가치를 할지, 직접 만져보고 입어볼 날만 기다리고 있다. 설마 품절이야 되겠어...?


 아버지에 비해선 ‘기분조절잘해’이지 않을까. 적당한 기분파지만 그래도 조절이 가능한. 기분파인 게 어떻게 보면 좋을 때도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어느 순간 기분이 확 좋아지기도 하고 서운함이란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좋은 기분으로 상쇄할 수 있으니까. 사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본인은 뜬금없이 좋아지곤 하는데 지하철 타러 계단을 내려갈 때 열차가 도착했다는 소음이 들릴 때나 여자친구가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무표정인 나를 보고 킹받아하는 모습을 볼 때 텐션이 올라간다.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이라 그런지 내 기분을 그 기류에 맡기고 싶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혈중알코올 일정 수준 유지하면 이전의 삶보다 더 나아진다는 이론을 직접 증명하는 교사 4명을 다룬 이야기다.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설득적이다. 어색한 사람과의 만남은 술 몇 잔 마시면 해결되는 마법 같은 일이 있곤 하니까. 감정 조절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효능도 있다. 뉴스에서 말하길 소주 한두 잔 매일 마시면 뇌졸중 위험을 낮춰준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술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적당히만 마시면 건강하고 적당히만 즐기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적당히를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어나더 라운드> 주인공들처럼 출근 전 아침부터 알코올을 주입할 수 없으니 다른 대체물을 마련했다. 기분을 끌어올려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낼 혈중카페인을 주입한다. 퇴근 후에도 남아있는 찝찝한 감정을 덜어내기 위해 육즙 가득한 고기를 먹는다. 제 기능을 다한 혈중카페인을 밀어내고 혈중지방으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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