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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Sep 19. 2022

관찰에 목적이 생길 때

 오랜만에 안국역에 갔다. 안국역은 외국인 친구가 생기면 꼭 소개해 주고픈 곳 중 하나다. 빨간 벽돌과 시멘트벽이 아닌 밝은 톤의 돌담이 이어져있고 그 끝엔 경복궁이 보인다. 아름다운 한국의 대표성을 띤 경복궁 뒤엔 아파트 대신 푸른 산맥이 중첩되어 있어 시야가 뻥 뚫린다. 또 경복궁에 들어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대기 중인 한복 입은 사람들을 보면 설날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큰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에 들어서면 전주 한옥마을에 온 듯 풍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과 곳곳에 보이는 오래된 간판의 세탁소. 새로 오픈한 통유리의 카페들보다 더 눈길이 간다.


 이렇게 산책 겸 구경을 하다가 허벅지에 열이 오를 때쯤이면 국립현대미술관에 간다. 21년도 초중반만 해도 사람이 많지 않아 널널한 간격을 유지하며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사람이 너무 많아 작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웨이팅까지 있을 정도. 더군다나 진득하게 주시할 수 있는 추상화를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는 영상 위주라 그것도 4차원적인 주제라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 눈길이 갔다. 많은 사람이 온 만큼 본인만의 성향이 확실한 사람도 꽤 많았다. 여자친구와 난 서로 툭툭 치며 “와 저 사람 바지 예쁘다.”, “저 할머니 스타일 좋다.” 툭툭 치고, 말하고, 같은 곳을 보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공감하기 바빴다.


 어두웠던 전시회에 나오자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벤치에 앉아 있는 여성분은 처피뱅 머리에 단아한 남색 원피스. 갈색 레깅스에 땡땡이 몇 조각.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이때는 여자친구를 툭툭 치진 못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고 사선의 젊은 부부 아니 스타일 좋은 젊은 부부가 서로에게 아기를 안기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느라 바빴다. 근처 찻집을 가던 중 여자친구가 툭툭 치며 말한다. “아까 벤치 옆자리 여성분 남자친구 만나셨네.” 바실 거리는 스카프와 남색 셔츠. 음유시인 같은 헤어스타일이 내려오는 비탈길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둘은 어울렸다. 둘이어야 어울릴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같은 말로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어쩔 때는 유독 사람에게만 관심이 가는 날도 있다. 그때가 언제인지 보면 꼭 무언가가 필요할 때이다. 가방을 사고 싶었다. 흔한 가방은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이곳저곳을 걸었다. 포스가 비범한 사람이 걸어오며 내 옆을 지나갈 때면 뒤돌아서 그가 맨 가방은 무엇일지 보았다. 르메르 재질의 소금빵같이 생긴 레더 가방. 간신히 휴대폰 정도만 들어갈만한 직사각형의 미니백. 같은 날 똑같은 가방 유형의 가방을 보고 나면 저 가방은 사면 안 되겠다란 판가름을 했다. 길거리에서 눈길이 간 사람들의 가방의 좋았던 점을 녹여내 나에게 착 맞는 가방을 찾고 찾아 2개월 만에 샀다. 철저하게 비교 분석을 했지만 역시나 사는 건 한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브랜드에서 진열된 가방을 마주쳤고 첫눈에 빠졌으니. 선구매 후인지. 그 브랜드는 그저 내가 구매했기에 어느 순간 내가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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