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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ug 12. 2022

닮고 싶은 동네

 그 사람의 향기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가 묻어있다. 태어난 동네, 태어난 김에 살아온 동네, 스스로 결정한 동네. 본인의 의지치가 담겨 있지 않은 곳에 동화될 것인가. 내가 닮고 싶은 곳으로 가 새로운 삶을 추구할 것인가. 은연중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독립을 다짐하고 예정하고 있을 테다. 그동안 나에게 입혀졌던 친숙하고도 자연스러웠던 고향의 향기를 털어내고 처음엔 낯선 향에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좋아했던 추상적인 향기를 입을 수 있는 동네의 향기에 적응하고 싶을 테다.


 내가 닮고 싶은 동네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곳저곳 다닐 수밖에 없다. 8차선까지 펼쳐진 도로도 가보고 멀리서 자전거가 달그락 오면 빨간 벽돌에 밀착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비좁은 골목까지. 조명 하나 켜져 있지 않은 해가 쨍쨍한 낮에도, 형형색색 조명만에 의지한 불 꺼진 매장이 즐비하는 저녁에도.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내가 알던 곳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익숙지 않으니까. 소리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오전 11시 번쩍거리는 핫플이 있는 동네에 온 사람들이 겹쳐진 소리와 불 꺼진 핫플 건너편 주거지역이 있는 그 동네의  오후 11시. 모처럼 한적함이 찾아와 새벽이라 착각했는지 차디찬 새벽의 공기가 유독 일찍 찾아온다.


 핫플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덕분에 서울 곳곳을 가본 것 같다. 핫플의 종류는 다양하다. 클럽처럼 굉장히 시끄러운 곳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사색을 즐겨야 하는 곳도 있다. 다만 하나같이 똑같은 게 있는 게 바로 가격. 이 가격이 참 못생겼다. 그래도 늘 새로운 경험을 돈 주고 사는 거니까란 아주 상투적인 위로를 한다. 어느 순간 핫플에 가면 그곳을 즐기는 것보단 주위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저 사람 뭔가 분위기가 있는데 신발은 뭘 신었는지, 가방은 뭔지, 주로 무슨 말을 할까. 세상에 개성 있는 사람들의 집대성은 역시 핫플이었다.


 저녁에 의자와 침대를 사지 말란 말이 있다. 고된 웨이팅 끝에 먹은 음식과 커피는 그 무엇보다 맛있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쟁취한 핫플에 자리하게 되면 그 무엇보다 뿌듯하지 않나. 핫플이 핫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실제로 노티드 도넛이 한창 핫할 때 웨이팅이 길어 포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노티드 박스가 덩그러니 있었는데 협업 업체에서 가져왔다고 하더라. 바로 도넛을 집어 먹어봤는데 딱히 감흥이 없었고 지금도 노티드를 평범한 도넛 가게처럼 여기고 있다. 그때 웨이팅을 포기하지 않고 도넛을 한 입 먹었더라면 인생 도넛이 되었지 않았을까.


 요즘은 핫플이 있는 동네에 관심이 간다. 여러 페르소나를 가진 곳. 성수동과 한남동. 주위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세상 힙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에서 보드를 타기도 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골든 리트리버와 땡그란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과 아이컨택하는 비숑과 산책하고 형광색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팔뚝에 흘러내린 땀을 식히며 조깅하는 사람이 동네 주민인 여기. 어쩌면 이곳은 핫플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 하지만 이 또한 핫플의 허상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이 동네 역시 핫플의 기다림과 애착처럼 지금은 살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게 멋져 보이고 닮고 싶어 하는 등 이곳을 동경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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