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새해 소원은 글로벌하게

by 무기명

빼곡한 기록으로 채워졌던 달력이 나만의 역사가 될 때. 손이 닿지 않을 서랍 맨 아래 칸에 자리하게 될 때쯤. 제야의 종소리 카운트다운이 곧 시작된다는 TV 소리가 들린다. 생방송인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뉴스의 아나운서도 그 순간만큼은 10초라는 카운트다운에 집중한다. 10, 9, 8, 7, 6, 5, 4, 3, 2, 1. 해피뉴이어.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뚜렷하게 명시된 2023년을 확인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알림 메시지에 보답하고자 단톡방에 들린다. 설혹 친구끼리 있는 방이 아니라 선배나 회사 톡방이라도 밤 12시가 넘어서 보내는 민폐 카톡이 아니라 아침 12시에 덕담이 오가는 정겨운 메시지가 되는 날. 한동안의 폭발적인 덕담들이 오간 후 소강상태의 정적을 고스란히 마주한다. 일찍 잠든 가족과 왠지 잠이 오지 않는 그날. 매번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는 잠이 오질 않는다. 딴짓이 지루해질 때 잠이 들었고 1월 1일의 햇살보단 LED 조명에 눈을 찡그리며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평소 주말처럼 일어나 넷플릭스를 본다. 기존에 보던 것보다는 새로운 순위권에 올라온 것이나 찜해둔 영화를 택한다. 영화의 내용보단 배가 고프다는 게 신경 쓰일 때 주방에서 떡만둣국 먹으라는 소리가 들린다. 식탁엔 2023년을 가득 담은 떡만둣국이 있다. 카운트다운 이후에도 새로운 나이를 먹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역시 몸소 한 살 먹어주니까 나이의 낯섦이 확실해진다. 시간이란 게 없었으면, 성직자들이 시간이 아닌 다른 것을 만들어냈더라면 어땠을까. 시간이란 개념은 없어졌고, 나이라는 경계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을 주기적으로 느끼지 않을 테다. 세월의 흐름의 경과는 몸과 얼굴의 변화로 나름 짐작할 것이고 사람 간의 위아래는 상대방에 느껴지는 아우라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도 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아우라가 없다는 건 아니듯 널리 존중받을 위인은 꼭 흰머리 지극한 사람이어야 하진 않다. 성품이 곧 나이테가 되는 시절. 시간이 없는 시절엔 새로운 다짐을 찾기보단 본인이 가진 생각과 취미를 숙성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난 여전히 새로운 취미를 찾고 싶다. 운동은 돈이 한다는 말이 있다. 일단 지르고 보라던데 실내 테니스장이라도 다녀야 하나 고민 중이다. 회사 헬스장에 바치고 있는 돈은 월 2만원밖에 안 된다. 그래서 그런지 발길이 안 간다. PT를 받아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운동 종목을 확대해 나가는 건 왠지 새롭지 않다. 움직이고 땀 흘리고 알배기고. 운동의 성과는 비슷한 결이라 그런가 보다.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에 도전해보고 싶다. 생뚱맞게 연기학원처럼.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 목소리 톤의 고저, 감정이 묻어나는 카피를 잘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자친구에게 말해보니 친구가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그룹수업인데 내용이 심도 깊고 본인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나? 동네 연기학원에 전화해봐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성인취미반, 주 1회 1시간, 1:1 수업 후 그룹수업, 그룹수업은 필수 아님, 45만원, 상담 후 이틀 내 현금 결제 시 38만원. 그럼 1시간에 약 10만원…? 전화를 끊고 계산을 해봤고 고민이 길어진다. 과연 연기를 배운다는 게 도움이 될까?


1월 1일 기념으로 가족끼리 외식을 했다. 평소엔 지난 이야기로 가득했었는데 오늘만큼은 앞으로의 이야기가 많았다. 다가오는 누나의 결혼식은 잘 준비하고 있는지, 엄마가 새롭게 배울 운동은 탁구라는지 등. 각자 혼자만 생각하던 향후 계획을 공유했다. 나도 서른이 되기 전이거나 이직을 하고 나선 자취를 할 예정이라고. 숨 쉬고 움직이는 데도 본인의 돈이 드는 게 자취라던데 그 경험은 돈으로 살 순 없으니까 막대한 돈을 지불할 생각으로 자취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돈을 모아서 전세로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 부모님의 표정은 ‘그래 한 번 해봐라.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될 테다’처럼 보였다. 스쿠버다이빙 중인 주식 계좌가 언제 수면 위로 올라올 진 모르겠지만, 강민경님의 말씀을 되새겨본다. “버티는 거야. 버티고 보는 거야.” 토스에 들어가면 대문짝만하게 보이는 주식 계좌를 숨겨놓아야겠다. 세계 경제가 어서 봄이 오기를 바란다. 계묘년 새해 소원을 글로벌하게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