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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Feb 10. 2020

가나자와-일상이 예술이다

일본 소도시 26 - 윤봉길 의사를 기억하며

시라카와고에서 버스 타고 한 시간쯤 도착한 가나자와 역. 일본 전통 타악기 쯔즈미, 장구형상화한 상징물 쯔즈미 문이 세련된 형태로 서있다. 그 옆에 전통 문양의 오색 직물 기둥이 화려하게 줄지어 서있다. 스타벅스 옆쪽에 히가시야 챠 주전자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아트 시계가 1분마다 시간을 바꿔주고 환영 인사도 보낸다. 입구부터 전통에 기반을 둔 건축과 디자인이 새롭게 재탄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분이 이 도시에서 처형되었다. 착잡한 심정이 밀려오는 것은 뭘까? 이곳에 나를 찾는 여행, 시선의 균형을 잡으라는 신호이다.


 걸어서 10분 정도 골목길에 들어서니 미리 예약한 kulton 아파트가 보인다.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고자 타마가와 공원 근처 소형 아파트를 빌려 지냈다. 가나자와의 부엌 오미초시장도 근처이고 도서관도 바로 옆이다. 깔끔한 구조와 디자인, 위치나 가격 면에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짐을 두고 공원 따라 걷기 시작.


일본 전통 타악기 쯔즈미, 장구를 형상화한 상징물 쯔즈미 문


먼저 찾은 곳은 2004년 10월 개관, 인구 47만의 소도시  가나자와를 세계적으로 알린 21세기 미술관. 당시 협동조합으로 설계를 맡은 건축가 듀오 SANAA는 명성을 얻고, 후일 프리츠커상을 타며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다.
지름 113 미터의 투명 유리로 둥글게 둘러싸인 원형 미술관. 네 조각으로 나눈 통로가 밖으로 연결되는 입구이다. 1층은 온전히 주민을 위한 전시 겸 통로이며 밤 10시까지 오픈이다. 사무실은 위층으로 옮겨 관람객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부는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 전시 공간이 엇갈려 있다. 내부 곳곳에 뜰이 마련되어 있으며, 빛은 자연 채광을 활용한다.  원형 미술관의 유리로 된 외벽과 입구는 사방으로 열려 있는 느낌을 준다.  관람객은 건물 바깥쪽 어떤 도로를 통해서든 여유롭게 들어올 수 있고 건물의 내부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도시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Colour Activity House와 원형의 21세기 미술관


디자인 갤러리, 어린이 스튜디오 등과 연계되어 지역 사회에 접근이 쉽다. 또한 겐로쿠 정원, 가나자와 성 등 역사지구와 상업 지구에 둘러싸여 있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그 누구든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와서 원하는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건축가의 혁신적 사고가 돋보인다. 
상설 전시작품 중 아르헨티나의 레안드로 에를리히의 ‘Swimming Pool’이 유명하다. 10cm 정도 차있는 물이 밖에 서있는 사람과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모두에게 완벽한 착시 효과를 선사한다. 수영장 안과 밖에서 바라보는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된다. 예술이 일상 속에서 삶의 진보를 가져온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레안드로 에를리히의 ‘Swimming Pool’

 


나오시마 지중미술관과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만나는 제임스 터렐의 ‘하늘 연작’이라 할 수 있는 Blue Planet Sky. 천장 가운데 뚫린 직사각형 하늘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이 그대로 작품이 된다. 빛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예술이다. 삶에서도 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빛과 방향이다. 건물 밖 올라퍼 엘리아슨의 ‘Colour Activity House’. 구부러진 색색의 유리판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색깔이 독특하다. 유리벽으로 구성된 투명한 미술관에 색감이 있는 투명 유리판이 어울린다.


 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거리에 나왔다. 거리는 조명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변신한다. 도로 오른쪽 제4 고등학교 자리에 지어진 역사박물관에 불이 들어오니 붉은 벽돌과 어울린다. 오미초 시장에 들러 이거 저거 살펴보다 Meitetsu M'za 백화점 지하 식료품 가게에서 이곳의 명물 금박 케이크와 싱싱한 식료품 몇 가지를 사고 멋진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나자와 역사박물관 붉은 벽돌

아침 일찍 아픈 우리 역사도 함께 숨 쉬고 있는 가나자와 성에 올라갔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공원 도시락 폭탄 사건으로 제9사단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윤봉길 의사. 거사 이유는 당장 독립은 어려운 것을 알지만,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세계에 조선의 존재를 명료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윤봉길 의사 사형은 오사카에서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석방 요구 및 조선인들의 민심에 불안함을 느끼고, 사형 집행을 철회, 삼엄한 경비 속에 윤봉길 의사를 가나자와로 압송, 1932년 12월 18일 오후 4시 35분 모리모토 역에 하차한다.


윤봉길 의사가 압송된 모리모토 역 1932.12.18


윤봉길 의사는 가나자와 성 안 위수 구금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19일) 아침에 육군 공 병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가나자와 성 위수 구금소 건물은 현재 철거된 상태이며, 가나자와 성 하시즈메 문 매표소 공중화장실이 들어선 자리이다. 가나자와 성 도조・쓰루마루 창고는 제9사단의 군복을 보관 창고이다.  


가나자와 교외 노다 야마 공동묘지의 한쪽에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암장지적' 비석이 세워졌다. 유해는 육군묘지 언덕 아래 방치된 곳에 묻혀있었으나 우익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8년에는 암 장지에 대한 영구임대 허가도 받았다고 한다. 김구 선생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윤봉길 의사 유해도 봉환돼 1946년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하얀 지붕으로 된 가나자와 성


가나자와 성은 넓은 공원에 지붕이 흰색 기와로 되어있다. 전쟁에 대비하여 납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화재로 대부분 손실되었다. 지금 시설은 1996년에 공원 정비 후 새로 지은 건축물이다. 성의 내부에는 복원 과정과 목조 구조 등에 대한 설명을 위한 전시되어있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져 관찰과 감시, 공격과 방어 등이 계산되어 있다고 한다. 옹성과 치, 원총안과 근총안 등 철저하게 계산된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수원화성이 떠오른다. 효성과 문학, 과학과 역사가 어우러진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우리나라에 있다.

   

가나자와 성에서 나와 부속 정원 겐로쿠엔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금가루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소량이라 그런지 일반 아이스크림 맛이다. 미토시의 가이라쿠엔, 오까야마 시의 고라쿠엔과 더불어 일본 3대 정원에 속한다. 정원에 나무도 심고, 연못도 만들고, 정자도 짓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한 임천 회유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6개의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여 겐로쿠(6) 엔이다.

 

이끼와 푸른 나무로 가득한 정원


162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에도시대 제2 다이묘 마에다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겨울에도 정원 내 이끼가 가득한 숲길을 걸을 수 있고, 정원에서 가나자와 시가지를 바라볼 수 있다. 겐로쿠엔에는 약 8,750그루의 나무와 183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분수와 붉은 다리, 두 개의 다리를 가진 고토지 등롱은 가나자와의 상징이다. 겨울에 폭설로부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밧줄로 나뭇가지를 원뿔 모양으로 연결한 유키 쓰리가 유명하다.


일본 3대 정원 겐로쿠엔과 유키 쓰리

 

메이지유신 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5대 도시였던 가나자와가 근대화에서 밀려났지만 도시의 핵심 동력을 문화예술 분야에서 찾았다. 전쟁, 대규모 지진의 피해가 없어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고, 금박공예, 염색기법 및 화과자 등 음식문화도 수준이 매우 높다.  고풍스러운 에도시대 전통 목조 건축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히가시차야 거리. 오랜 옛 건물에는 음식점, 다실, 공예품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400년이 넘은 예쁜 과자점과 전통 공예품 보러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기모노를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로 붐볐다.


히가시차야 거리 골목 180년 된 찻집으로


180년 전에 지어진 옛 건물 그대로 운영하는 찻집에 들어가 찹쌀떡과 말차를 마셨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 잠시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오랜 세월 묵은 나무가 주는 여유랄까?

 교토의 기온이 있다면 가나자와에는 차야가 있다. 에도시대 게이샤들의 춤과 연주를 술과 식사와 함께 즐기던 일종의 유흥가였던 차야는 히가시차야, 카즈에 마치, 니시 차야 3곳으로 지금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히가시차야는 길 전체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가나자와 아파트에서 지내는 시간들, 이전 저런 요리를 맛보고, 소도시의 편안함을 느끼는 기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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