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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pr 19. 2019

의미있는 하루

멸치 다듬기


아이들을 보내고, 오전내내 멸치를 손질했다.

반찬용 잔멸치가 아닌 육수용 다시멸치인데, 어른손가락만큼 굵고 큰 멸치다.  팔순의 어머님이 몇 해전부터 밥상에 국물이 없으면 식사를 힘들어 하다. 그러다 보니, 만만히 끓여낼수 있는 된장찌게. 된장국을 자주 끓이는, 된장국에 멸치는 절대 빠져선 안되는 필수 식재료이다. 


한달전쯤, 먹던 멸치가 바닥을 보였다. 다쳐서 약해진 허리로 장보러 가기 어설, 인터넷으로 멸치를 저렴하게 구입했지만, 몸이 귀찮아 신경을 쓰지 못했다. 택배가 오던 그날부터, 냉장고위에 뜯지도 않고, 박스째 그대로 지금까지 놓여 있었다.  더이상 놔면 먹지못할 지경이 될까 서두르기로 했다. 처음 배달되었을땐, 다에서 갓 잡아올려 말린지 얼마안된듯 싱싱해 보였다. 말린 비늘이 반질반질한 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오늘 꺼내 살펴보니 색깔이 누렇게 변해 있다.  어쩌면 좋을까.....



손질해 멸치가루로 만들기로 했다.

손이 많이 가긴해도 멸치를 갈아두면, 더 오래 보관할수 있고 육수를 낼때도 그저 한숟가락 푹 떠서 넣으면 그만이였다. 일단 멸치머리와 몸통을 분리하고, 몸통에 달린 멸치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멸치똥을 그대로 두면 쓰고 떫은맛이 난다. 멸치머리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어른들 말씀이 생선은 머리가 맛나다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멸치도 생선이기에, 멸치머리가 들어가면 국물이 더 깊은맛 다. 팁이 있다면 손질한 멸치를 갈기전에  달군 팬에다 살짝 볶아내면, 잡내를 잡아줘서 맛이 깔끔해진다.



거실에 신문지를 펴놓고 움직임  석고상처럼 쪼그리고 앉아 멸치를 다듬었다. 한시간,두시간이 거저 흐른다. 내겐 너무 익숙한 풍경... 19년전 시집왔을때부터 줄곧 지켜봐온 어머님의 모습이 그러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 올때면, 오메가메 들에 다니시며 달래,쑥,냉이,고들빼기등 지천의 봄나물을 부지런히 캐다 나르셨다.

철없는 며느리가 다듬기 귀찮아 행여 버려버릴까,항상 먹기좋게 말끔이 다듬어 주셨다. 그덕에 마늘, 쪽파,도라지등 손이 많이 가는 야채는 늘 어머님 차지였다. 어머님의 갈라진 손톱끝은 자주 녹색물이 들어있었고 까시레기가 일어나 거칠거칠했다. 짧지않은 지난 월 어찌 그리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실수 있었을까. 같은 풍경속 며느리는 닮아 가는듯 해도, 언감생신 어머님과는 하늘과 땅인듯 차이가 있다. 살아내셔야 했던 당신의 삶이 그러했다.


곱게 간 멸치를 한병 가득히 채놓으니, 당분간은 신경쓰는일 없이 잊어버리고 살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할까. 마실 나가신 어머님이 들어오심 어린애마냥 막 자랑하고 싶어진다. 예전같음 비닐팩에 대충 넣어 사용했을텐데, 19년 시집살이에 나도 많이 변한듯 싶다. 세월속에 어머님의 그림자를 닮아가는 내모습...아직은 어머님 그림자속에 머물고 싶은 내마음 이지만,  아이넷을 키우며 대식구 살림을 살아온 나의  살림내공도 이제 만만치 않다.


특별할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루도 똑같은 하루인적은 없다. 맞추다만 퍼즐판처럼 비어있는 삶의 빈자리가 보일때 오늘 난 무엇을 할까 요즘 들어 자주 생각을 한다.

무엇을 한 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렇다 해서 예전처럼 내 마음 흔들진 않는다.


살아온 날을 계수할순 있어도,앞으로 살아갈 날을 계수할순 없다고 삶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아주 작은 호흡도 영원으로 이어져 있기에 찬란하고 빛나고 의미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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