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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pr 10. 2019

  7개의 숟가락이 뭉쳤다

상추 비빔밥

하루 종일 추적추적

이른 아침 시작된 비는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빗줄기가 잦아들지 않고 더 세차게 뿌리고 있다.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시간.... 난 수북히 쌓인 설거지거리를  손도 대지 않은 채, 주방 식탁의자에 몸을 의지하고서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식구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실에 소복이 모여 앉아  저녁밥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주말 저녁은,  가족들이 다 함께 얼굴 마주 보며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나름 식단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오늘은 식사 준비할 마음이 영 동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 봄비 탓일까?...몸도 찌뿌등하고 마음도 가라앉은걸 애꿎은 봄비 탓하고 있다.


창문 밖,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내 마음으로 또록또록 떨어진다.  주방에서 이따금 흘끔흘끔  거실 쪽을 들여다보니 큰애들은 각자의 폰에 빠져있고, 개구쟁이 셋째와 넷째는 아빠의 팔다리를 하나씩 차지하고서 이따금 소리까지  지르며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고,  시어머님 텔레비전의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신다. 다행히 우리 집은 주택이라, 거실과 주방이 별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 주방은 이 모든 어수선함에서 나를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는 나름의 차단된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런 날은 그렇다.

그저 향기로운 차 한잔 내려서, 그 향기로움에 취해보거나 가만가만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에  귀 기울여 보거나, 혹은 책꽂이에서 애정하는 책 한 권을 꺼내어 펼쳐 읽고 싶은 날. 그렇지만,오늘은 주말 저녁이고 난 가족들의 저녁밥상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고, 아내고, 며느리다.

그러고 보니 내 위도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게 느껴진다, 그래. 일단 저녁부터 해결하자.



냉장고 점검부터 들어간다.

만든지 좀 지난 밑반찬  몇 가지와 김치 두어 가지가 있지만 글쎄,..왠지 마땅치 않다. 냉장고 속을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며칠 전 밭에서 공수해 오던 길로 문지에 고이  넣어둔 어린 상추가 눈에  띄었다. 그래! 오저녁은 네가 책임져 줘야겠어.  밭에서 데려오는 길로 냉장고에 넣어두었지만 워낙 보드라운 어린잎이라 오래 보관하면 물러서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린 상추 잎을 물에 한두번 설렁설렁 씻어서, 채반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후,감칠맛을 더해줄 김가루와 어머님표  고추장을 준비한다. 다른 재료를 더 보탤 수도 있지만 오늘은 오로지 상추다. 큰 양푼이에 상추와 김가루를 담은 후 들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더운밥을 담고 고추장을 아낌없이 한 스푼 푹 덜어서 양손으로 비비기 시작하면 고추장, 김가루, 들기름의  환상적 궁합이 절정을 이룬다.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익숙한 비주얼,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입속에서  팡팡 침샘이 터지고 만다.


"모두 숟가락 준비!~"


어머님 몫의 비빔밥은 따로 덜어드리고, 어른아이 상관없이 모두 각자의 숟가락을 사용해 상추 비빔밥을 요령껏 떠먹는다. 왜 그런지 몰라도 비빔밥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역시나 모두 냠냠 쩝쩝 오물오물 거리며 눈 깜짝할 사이 양푼이를 뚝딱 비우고는 부른 배를 두드린다.


"역시 집밥이 최고여"


남편이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 한 숟가락 겨우 거들었던  나지만, 남편 말 한마디에 먹지 않아도 배부른 주말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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