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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pr 22. 2019

오늘도 엄마는 미소짓는다

태어나 처음 가봤어요. (놀이공원)

"한바퀴 좀 걷고오자. 오는 길에 당신 좋아하는 냉면도 한그릇 사먹고"

쌓인 피곤이 몰려와 퍼질대로 퍼져버린 내게, 남편의 제안은 귀가 솔깃 할만큼 반가왔지만 금새 스스르 힘이 풀렸다. 몸이 내몸같지 않았다. 지친몸은 먹는것도 귀찮을 만큼 휴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면 몸살이 나는게 당연했다. 웬만하면 따라나서겠는데,지금 눕지 못하면 다녀와 또 아이들 저녁도 챙겨야하고 쉴 틈이 없을텐데....

"피곤해서 좀 자야겠어요,혼자 다녀 올래요?"

남편은 그럼 자기도 안 갈 거라며, 벌렁 누워버린다. 산책은 낮잠으로 바꼈다. 둘은 1시간 넘게 꿀잠을 잤다. 깨고나니 한결 몸도 가볍다. 역시 자기를 잘했다.


지난 토요일 이었다. 그날은 세째 네째랑 놀이공원에 가서 종일 따라다니며 제대로 엄마노릇을 한 날이었다. 남편도 다행히 시간이 맞아 함께 할수 있었다. 이제 곧 어린이날. 10살이 되도록 놀이공원 한번 구경못한 세째를 데려가, 이참에 점수좀 따야지 싶었다. 아이들 데리고 놀이공원 좀 다녀본 엄마라면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게다가 한창때도 아니고 이미 마흔을 오래전에 넘긴 엄마에겐 쉽지 않은 결심이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자그만치 6시간....오전 11시부터 오후5시까지 아이들이 놀이기구에 푹 빠져있는 동안, 남편과 난 교대로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귀여운 내 아이들, 사랑스러운 모습 사진에 담느라 온몸을 던 젊은 엄마들이 보인다. 내 아이에 대한 열정이 넘쳐 보였다. 나도 한때는 저랬었지...아이 넷을 낳고 정신없이 키우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오십이 코앞이다.



"엄마, 나 저거 한번 더 타고싶어"

꿈에 그리던 놀이공원에 왔으니, 하루종일 거기서 살고싶은 마음 아닐까. 그 마음 이해는 갔지만, 나와 남편은 에너지 고갈 상태였다. "그래 한번만 더 타고 집에 가자." 웬일로 남편이 승낙을 했다. 이왕 걸음한거 원없이 놀게해주고 싶은 기특한 생각을 했나보다. 남편이 이런 친절을 베푸는건 흔치 않는 일인데 싶어 나도 얼른 승낙했다. 한번더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1시간을 아낌없이 공들였다. 시계바늘이 오후4시에 걸려있다.  아이들은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호성을 지르며 맨 끝에 가 줄을 섰다. 워낙 인기가 있는 물썰매는 놀이기구의 레젼드다. 1시간 줄서는건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엔 남편과 내가 줄을 섰지만,세째는 기특하게도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즐겁게 줄 서는걸 마다하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타는 아이처럼 흥분되어 조금도 지친 기색 없었다. 사람이 좋아하는걸 하면, 이렇게 되나보나. 특히 아이들의 에너지는 어른이 감당할수도 따라할수도 없다. 마르지 않는 깊은산속 옹달샘 같다. 뭐든 노는것처럼 신나게 지겹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누구.여긴 어디? 놀이공원에서 엄마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강아지처럼 뛰노는 아이들과 남편사이를 왔다갔다 하느라 발바닥이 점점 열이나고 아파왔다. 남편은 피곤하다며 가져온  돗자리를 펴고 아예 드러누웠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내집 안방처럼 코까지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잘 수 있는 남편은 내편이  맞는건가. 나에게 아이들을 떠넘기고 편하게 잠을 자다니....이런 꼼수를 부리는건 예상밖이었다. 잠시 원망이 살짝 들었지만 ,피곤을 무릅쓰고 함께 시간을 보낸 아빠가 없었다면  나혼자선 여기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하는 측은지심을 가져본다.


놀이공원은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난 조용한 공원이 딱인데,사방에서 웅웅거리는 음악들, 비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함성때문에 귀가 먹먹하다. 준비해온 다 식어버린 캔커피 하나를 따서 홀짝홀짝 마시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20대 초반일때는 이정아니었는데 나이가 든건지 동심이 사라진건지... 롤코스트를 보기만 해도 아찔다. 20년전, 내가 저걸 탔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엄 마~~~"

출구로 나오는 아이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두 팔 벌려 힘껏 안아주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었는지 신났는지 참새처럼 조잘거렸다. 

"엄마, 우리 언제와?"

까만눈을 반짝거리며 다음 약속까지 챙기는 아이들.

/그렇게 재미있었어?"

""응, 엄마 다음번엔 꼭 같이 타자"

/응~그래.그래, 아빠 기서 자거든 깨우러 가자.

"아빠~아빠~ 우리 다음에 또 오자"

/그래,다음엔 더울것 같으니까 밤에 한번 오자."

아이들은 귀여운 투정으로 아빠의 약속을 받는데 성공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릴 아이들. 노란 튤립 만큼이나 환한 미소가 하루종일 떠나지 않는다.





19년째 애 키우는 엄마다.

옛날 같으면 할머니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 내리 사랑이란게 이런걸까. 늦둥이를 키우면 체력은 젊은 엄마에 비해 많이 딸리지만, 더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품게 되는것 같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추억하나 마음에 담을수 있어 행복했다. 이런 행복은 시간이 흐르고 묵혀갈수록 더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아이들 얼굴 소나기 내린후 구름 한점없는 하늘을 닮았다. 맑고 파란 하늘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엄마는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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