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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07. 2019

나의 시어머님 ​

보슬비처럼

딸같은 며느리?

새벽부터 내린 보슬비가 그칠줄을 모른다. 보슬보슬,  조용조용, 새색시 마냥 예쁘게도 내린다. 엄니는 아까부터 커피 한모금 하시다 창문 한번 보시고, 창문 한번 보시다 커피 한모금 홀짝이시고 눈치빠른 며느린, 벌써 폰으로 일기예보 검색에 들어갔다.


"비가 안 그칠라는 갑네"
"일기예보에 오늘 하루종일 내린다네요"

"우엉뿌리 캘라 했더만, 비와서 못가겠다"

"오늘만 날이라예, 오늘 안되면 낼 하고, 낼

안되면 모레하고 이제 쉬엄쉬엄 하셔요.어머니 몸 축내가며 하지 마시구요. 머 안되면 조금 사

먹으면 되죠"

"무신 소리 하노. 야가! 있는거 놔 두고 사 묵기는 머하러 사묵노"

"어머님 몸 상할까바 그렇지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으면 되요.  애터지게 하실라고 하지 마세요."

"심어놓기만 하믄 그냥 자라는거 뽑아 묵는것도 못하나"


내 친구는 어머님캉 내캉 애기하는거 우연히 듣고, 누가 들으면 내가 딸인줄 알겠다고 했다. 솔직히 몇 년 있음, 딸인 울 형님보다 며느리인 내가 어머님이랑 산 세월이 더 길어진다. 형님이랑 말을 섞을때도  내가 어머님이랑 더 오래 살게 될거라며 유세아닌 유세를 떤다. 시집와서 애 네명 낳고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리 된 것 같다. 어머님이 처음부터 그리 편한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역시 시어머님이 계실때랑 안계실때랑 틀린다. 어머님이 계시면 매사 긴장하게 되는건 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친정어머니 VS 시어머니

방송에 나온 남자분의 사연이다.

가끔씩 장모님이나 어머님(아내의 시어머님)이 며칠씩 집에 계시다 가시는데, 두 경우퇴근후 집에 갔을때 풍경이 너무 틀리다 했다.

1.장모님 와 계실때 : 아내가 살림을 대충 살고 장모님 데리고 외식도 더 자주 나가게 된다.

2.어머님 와 계실때 :  청소도 평소보다 더 깔끔하게 되어있고, 외식이 아닌 집밥에다 반찬도 맛난걸루 신경써서 올라온다.


본인은 당신의 어머님도 가끔 와 줬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말했다. 하지만, 아내의 스트레스로 인한 후폭풍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며칠 호사하고 곱배기로 시달릴건 예상 못하다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초보 남편이라 여겨졌다. 모름지기 여자, 아내, 엄마가 마음 편해야 온 집안이 편한것인데.


요즘은 또 상황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시어머니는 결혼한 아들집을 며느리집이라 칭하고 며느리가 집에 없을때 방문도 꺼려한다고. 하나같이 맞벌이 하는 집이 대부분이라 외식도 시어머님 쪽에서 먼저 하자는 분위기고, 아님 아들을 위해 직접 팔을 걷고 요리를 하신다는 분도 늘어가는 분위기다. 머 이정도는 썩 나쁘진 않은거 같다. 여유있고 할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고, 주변에서 함께 거들면 되지 않을까. 며느리라는 이유로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 이젠 아니다. 시대가 한참 바꼈다. 


우리 어머님 세대는, 품삯없이 부릴수 있는 일꾼이나 다름없는게 며느리였다. 일단 며느리가 들어오면 일하던 머슴도 내보내고 작심하고 이른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는게 흔한 일이였다.  불쌍하고 억울한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한 걸로 여겼다.


"아 낳고 몸조리 카는거 못해봤다. 몸조리가 어딨노. 친정도 못갔는데"

 

험한 시절에 태어나 험한 세월을 사시 동안 죽을만큼 고생하신 옛날 분이시지만, 나의 시어머님은 또래 친구분들에  비해 퍽이나 사고가 유연하신 분이셨다. 지금이야 서로 눈빛만으로, 표정만으로 대충 기분을 읽을 수 있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이 편한 관계가 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린듯 싶다. 어머님 맘을 들여다 볼수는 없지만, 어머님 역시 처음부터 내가 탐탁치 았을거라 가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모든게 허물이고 부족함임을..... 19년전 나를 바라보던 어머님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며느리에게 당신의 속내를 들킨적은 없으시다. 그런 면에서 쌓아오신 당신의 삶의 내공이 진실로 대단하다 여겨진다.



보슬비처럼


식구가 아홉일때가 있었다. 그땐 살림도 서툴고 육아도 서툴고 모든게 서툴었다. 젊은 며느리는 어린 아기를 안고 밤새 젖을 물리고, 떨어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 새벽밥을 해서 식구들 아침상을 차리곤 했다. 식사가 끝나면, 엉망인 주방 씽크대에 가득 담겨있는 설겆이가 태산처럼 나를 짓눌렀다. 아이가 어릴땐 얼마나 잠이 쏟아지던지 그냥 방에 들어가 퍼져버리고 싶었지만 며느리는 그럴수 없었다. 한여름 장마철엔  밀린 빨래가 여기저기 한가득 쌓여 있고, 어쩌다 몸살이라도 난 날의 집안꼴은 도둑이 든것처럼 난장판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날, 어머님은 늘 묵묵히 당신의 일을 하실뿐 말씀이 없으신 분이였다.  빨래가 왜 이 꼬라지냐 집안 꼴이 이게 뭐냐, 반찬이 이래서 되겠냐 이런 잔소리들 충분히 하실수 있는 옛날분 이신데 입밖에 뱉지는 않으셨다.


난 그런 시어머님과 커피를 자주 마셨다. 아침상을 물린뒤,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아이들 어린이집차에 태워 보내고 나면, 쪼르르 주방으로 가서 설겆일랑 제껴두고 먼저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올렸다. 봉다리커피 두개를 뜯어 머그잔에 탁탁 털어넣고, 바르르 끓는 물을 부어 어머니께 갖다 드린다.


따끈한 커피잔을 들고 마주한 우리 두사람.

어머님 어렸을때부터 자라온 이야기, 시집와서 아버님이 어머님 마음 아프게 하고 고생시킨 얘기, 죽지 못해 아이들 때문에 산 얘기를 들었다. 서른도 안돼 소박당한, 얼굴도 모르는 서슬퍼런 시할머니의 깊은 한까지 낱낱이 들었다. 

어머님의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기쁜일보다 슬픈일,아픈일,억울한일이 한가득 이셨다. 했던 얘기 또 하시고 몇 번이나 반복 하셔도 난 마치 처음 그 얘기를 듣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님은 처음 그 애기를 하는 사람처럼 매번 흥분하셨다.


홀짝홀짝 커피 한모금 마실때마다 내쉬는 한숨 한번...어머님의 서러움도 조금씩 가라앉는듯 보였다.  우린 우리가 마신 커피봉다리 갯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쌓이면서 로를 알지못해 생긴 오해들이 이해로 바뀌게 되었다.


하루종일 보슬보슬. ...


"밭에 올라가 보니까, 비가 제법 왔는 갑더레이.땅 밑에 까지 꼽꼽하게 ( 촉촉하게 ) 물이 들어갔더라.요래 내리는 비가 실하니라. "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나의 시어머님은 보슬비같은 분이셨다.


 한꺼번에 퍼부어 땅속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 튕겨 땅만 상하게 하는 한여름 소낙비가 아니라, 보슬보슬 땅속 깊이 스며들어  쉬이 마르지 않고, 생명을 싹트게 하는 봄날의 보슬비 같은 분이시다.

땅에 뿌리만 박고 겨우 버티고 있던 연약한 나를  지탱하게 하고,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마침내 꽃을 피우 하셨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슬비처럼  스며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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