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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의 메디컬 체크

by 고블린 연구소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야구는 스토브리그에 돌입했다. 이 기간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FA 선수 영입 경쟁이다. LG는 며칠 전에 국가대표 외야수 박해민 선수와 FA계약에 성공했다.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KBO 최고의 중견수가 넓은 잠실구장을 지킨다니 마음 든든하다. 또한 도루왕 출신 박해민 선수의 빠른 발이 LG 기동력을 배가 시켜줄 것이라고 팬심을 가득 담아 기대해 본다.


FA 선수를 결정거나 외국에서 용병을 데려올 때는 필수적으로 메디컬 체크를 거치게 된다. 많은 연봉을 지불해야 하는 구단 입장에서 선수의 몸 상태를 계약 전에 파악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종합검진은 물론이고,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X-ray 와 MRI 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야구 선수와 마찬가지로 경주마도 매매할 때는 세심한 마체검사를 한다. 어떤 말을 들여오는가에 따라 마주와 마방의 성적이 좌우되므로 당연히 신마의 선발은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경제적인 면으로 생각해도 경주 데뷔시기 연령의 더러브렛 가격이 평균적으로 중형차 값정도 하니 거래 전 수의검사는 이제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마주가 경주마를 구매해서 마음을 나눌 반려동물로 입양하려는 것은 아니다. 많은 돈을 들이는 일차적인 목적은 폭발적인 달리기 실력을 가진 육상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거래 전 수의검사는 자연히 운동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한다. 이때 이루어지는 검사는 크게 보면 다리 엑스레이 검사와 호흡기의 관문인 인후두부위 내시경검사로 나누어진다.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서 앞다리와 뒷다리를 이루는 관절을 체크한다. 관절을 이루는 뼈의 골절이나 골편 여부는 물론이고, 관절면의 닳은 정도나 염증정도 등을 판단한다. 평소에 말이 파행(다리를 절거나 불편해함)을 하거나 다리가 부어있는 등의 증상이 없어도 검사상으로는 여러 가지 소견 사항이 발견될 수 있다. 관절에서 발견되는 작은 문제들이 어렸을 때는 사소해 보여도, 경마장에 입사해서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 중대한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말은 폐로 뛰고, 심장으로 견디며, 성질로 이긴다.’ 이 말은 경마판에서 가장 오래도록 회자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격언이다. 그만큼 이 짧은 문장에는 많은 진실이 담겨있다. 5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시속 60킬로 이상으로 달려야 하는 경주마에게 호흡기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기가 허파로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한 기관들이 이상이 있으면 호흡이 딸려서 제대로 뛸 수 없다. 예컨대 후두덮개가 기형적으로 생겼거나, 피열연골이 제대로 열리지 않으면 경주마로서 대단한 핸디캡을 떠 안개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사전에 체크하기 위해 내시경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를 하면서 아무 문제점도 없을 때 수의사를 비롯해서 이 검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다. 일단 검사 시간도 짧아지고 구매자에게 장황하게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말을 파는 생산자에게 좋은 소식이 된다. 이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말은 본격적으로 경주마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이 복잡해진다.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고, 해당 사항에 대해 관련된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큰 경우에는 몇 천만원짜리 거래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다. 형편이 나은 곳도 있지만, 대체로 요즘 말 농가가 재정적으로 어렵다. 이 말을 팔아야 밀린 건초값도 내고, 내년 초지 임대계약도 갱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소견 사항이 발견되면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물론 생산자도 약점이 있는 말을 숨기고 팔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점을 모르고 훈련이나 경주에 임하다가 임상증상을 보이고 나서 대응을 한다면 비용이나 재활 기간이 몇 배 불어난다. 질병의 씨앗을 찾아내서 선재적으로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매매 전 검사는 의미가 있다.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항상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거액을 받은 FA 선수가 부상으로 벤치만 지키면서 먹튀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런 일은 동일하게 경주마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마주는 물론이고 생산자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어떤 목장도 자신의 아들딸 같은 말이 경마장에 입사하고도 아파서 마방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검사를 통해서 매매 당사자들 간에 분쟁의 불씨를 줄이고, 소중한 마필들이 건강하게 주로를 질주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검사한 말들이 일등도 하고 대상경주 우승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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