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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Mar 13. 2022

아들을 바라는 경주마 시장 이야기.

씨암말 배란일을 맞춰야하는 수의사

“아이고 고원장 간밤에 또 암말 낳어.”


번식검사를 하러 목장을 찾았더니 사장님이 출산 소식부터 전한다. 망아지가 건강하게 나온 건 좋지만, 암놈이어서 아쉽다는 마음이 말속에 묻어있다. 온 나라가 새로 뽑은 대통령에게 눈과 귀가 쏠려있지만, 말목장의 관심은 어젯밤에 태어난 우리집 망아지 성별에 맞춰져 있다.


 경주마 시장에서 숫말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숫말의 경주 성적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13일 기준으로 한국마사회 서울경마장 1군등록마는 모두 63두인데 그중 암말은 단 4마리에 불과하다. 당연히 숫말이 암말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혈통과 체형이 비슷할 경우 숫말이 50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면, 암말은 잘 받아야 3000만 원 정도에서 거래가 된다.


 그러니 밤새 잠을 설쳐가면서 망아지를 받았는데, 녀석이 물건을 달고 나오지 않으면 한숨을 쉬게 된다. 그런데 일부 목장 사장님은 암수가 결정되는데 씨암말의 교배 타이밍이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씨수말과 교배한 후에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배란이 되어야 아들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말들의 합방일은 수의사가 결정하므로, 딸만 줄줄이 나오는 집에서는 농담반으로 수의사에게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게 된다.


 번식철에 생산목장을 담당하는 수의사들의 주요 업무는 씨암말들 교배 날짜를 정하는 일이다. 인기 있는 씨수말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들의 핏줄을 원하는 농가는 줄을 서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타이밍에 교배를 해야 임신 확률이 높아지고, 씨수말 체력도 아낄 수 있다. 또한 교배할 때 암말의 발정도 좋고, 농가에서는 내년에 이르게 망아지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니 씨암말이 교배소 가는 날을 점지하는 일은 이래저래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수의사는 교배일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보통은 번식농가를 이틀에 한 번씩 방문하여 직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서 씨암말 난소와 자궁 상태를 관찰한다. 그래서 난소 내 난포가 점점 커가면서 배란일이 다가오면 씨수말과 만나는 날을 정한다. 교배 후 자궁으로 들어간 정자는 난관에 이르러서 난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이때 정자가 수정되기 전까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을 3일에서 5일 정도까지로 보지만, 보통은 이틀 내에 난자와 만나야 수정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수의사는 교배하고 이틀 후에 난소를 다시 확인해서 배란 여부를 체크한다.


 수의사는 배란일을 맞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데이터를 이용한다. 난포의 크기와 촉감, 씨암말 배란주기, 자궁의 주름이나 감도까지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하여 합방일을 택일한다. 하지만, 씨암말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따라서 배란일을 정확히 맞추는 일은 매우 어렵다. 슈퍼컴퓨터로도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는데, 그 많은 사모님 말들이 언제 만남을 원하는지 어찌 정확하게 집어내겠는가. 그저 종부의 결과가 좋을 것 같은 확률 높은 날을 고를 뿐이다.


 이처럼 이틀이라는 범위를 가지고도 배란 시점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몇몇 목장 사장님들은 교배하고 하루 안에 배란되어야 숫망아지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아들 유전자(엄밀히 말하면 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생명력이 약해서 일찍 죽으므로 가능하면 빨리 난자가 배란되어 나와서 수정돼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교배 후 이틀이 아니라, 하루 만에 배란될 수 있는 종부일 예측을 수의사에게 바란다. 이건 날라오는 탁구공을 탁구채가 아니라, 밥숟가락으로 받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된다.


 우선 배란 시점에 따라 암수가 결정된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산과책이나 말번식서적을 다시 뒤적여 보아도 그런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 그래도 목장 사장님들이 간절하게 숫망아지를 원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나 역시 되도록이면 아들이 많이 태어나기를 고대한다. 친 딸과 같은 씨암말들의 번식을 나에게 맡겨 준 고마움이 크다. 번식마들이 무사히 임신하고 가능하면 숫놈을 낳아주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목장 사장님보다 담당 수의사가 더 클 것이다.


 검사를 하면서 살펴보니 간밤에 태어난 망아지는 암놈이지만 힘차게 엄마 젖을 먹고 있다. 아주 건강하다는 신호다. 숫망아지를 많이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검사해서 임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뿐이라고 설명을 드렸다. 목장 사장님도 고개를 끄떡이신다. 검사가 끝나고 다음 농가로 이동하기 위해 초음파 기계를 정리해서 나오는데 등 뒤에서 사장님의 혼잣말이 떨어진다.


 “아...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절정을 느껴야 아들이 생기는 법인데...”


*사진은 번식 초음파 검사 모습과 배란이 임박한 난포의 초음파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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