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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Dec 11. 2022

누구도 다른 생물을 판단할 수 없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맘때면 대형서점이나 신문사에서는 항상 올해의 책을 뽑아서 발표한다. 그중에는 공통적으로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책이 있다. 상반기 화제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지음/정지인 옮김)’이다. 나도 한창 바빴던 봄에 틈틈이 읽었었는데, 솔직히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었다. 그래도 요즘 들어 좋은 책이라고 손꼽히기에 다시 한번 밑줄 쳐논 부분을 읽어보았다.


 우선 제목이 다분히 도전적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니. 다큐멘터리를 보면 빛도 들지 않는 심해에도 다양한 모습의 어류들이 존재하고, 가깝게는 우리 식탁에 매일같이 고등어자반이 올라오는데 말이다. 설마 말장난이거나, 문학적 비유라는 변명으로 빠져나가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제목을 통해서 저자가 전달하려는 표면적인 정보는 분류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즉 계통상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조류, 포유류, 양서류는 존재하지만 어류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물속에 사는 동물들을 통칭해서 물고기, 어류라고 분류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는 곳이 같을 뿐 해부학적 구조에서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예컨대 폐어라는 물고기는 폐의 형태나, 후두개 유무, 심장 구조 등이 연어보다는 소와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고래가 포유류로 분류되는 건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어류라는 표현은 다분히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설정된 것이며, 그 속에는 다분히 경멸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을 가장 진보된 형태의 동물이라고 결정하고, 그 사다리 밑으로 여러 생명체의 위치를 제멋대로 ‘분류’한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런 분류학의 대표자로 책에서는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에 알려진 물고기 가운데 5분의 1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주었을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했던 사람이다. 대외적으로도 성공해서 인디애나 대학교 최연소 학장과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애초에 저자 룰루 밀러는 이러한 입지적인 인물을 통해서 세상의 질서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조던에 대한 각종 서적과 자료들을 연구하면서 그의 학문적, 사회적 성공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알게 된다.


 어류라는 단어에는 다분히 인간의 우월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그런데 조던은 이런 차별적인 잣대를 다른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한다. 그래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그들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한다. 그는 이른바 ‘우생학’을 인류 진보의 방법으로 주장하고, 그의 의견은 당시에 다수에게 지지 받는다. 사회 엘리트들의 혈통이 다수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와 그시대 미국의 목표였다. 놀랍게도 이런 우생학의 개념은 그 얼굴을 숨긴 채 최근까지도,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고 책은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민들레를 예로 든다. 어떤 이에게 민들레는 잡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 화가에게는 염료이고, 히피에게는 화관을 선사한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며, 벌에게는 짝짓기 침대가 되어 준다. 이런 예들은 다윈의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 다윈은 인간의 눈에는 오류가 있고, 생태계는 복잡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생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일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의 저울로 함부로 생명체를 판단하거나 분류하는 일을 경계한 것이다. 우리 눈에는 하등하거나 불쾌해 보이는 생물의 특징도 다양한 자연환경에 적응할 때는 요긴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생명체는 완벽하게는 이해될 수 없는 복잡성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범주는 사실 우리 머릿속 상상의 산물이다. 생명체를 나눌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오류로 가득 차 있으며, 그 결과물이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별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걸 받아들였을 때 인류는 우주를 얻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생명체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걸 수용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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