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블린 연구소 Nov 27. 2022

내 기억 속 여우를 찾아서.

넬레 노이하우스 '여우가 잠든 숲'을 읽고.

뉴스를 통해서 학교폭력이나 10대들의 범죄를 접하게 된다. 급우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학생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매년 반복된다. 같은 반 친구에게 성매매를 시키고 금품을 갈취했다는 보도 역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어릴 때는 누구나 성숙하지 못하다. 특히 급박하거나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황에선 더욱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여기에다가 그 나이에 부릴 수 있는 호기나 또래 간의 의리 같은 감정적인 측면까지 보태지면 어른보다 더 참혹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학창 시절에 피해자나 혹은 가해자로서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성인이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결정을 하고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된다. 여든 살이 되어도 작은 바늘이 심장을 찌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여우가 잠든 숲’은 바로 어린 시절 겪었던 불행했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루퍼츠하인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소년, 소녀들은 당시 11살이었다. 그날 그들은 옆 동네와의 축구에서 크게 패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돌아오던 숲속 길에서 그들은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게 된다.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동급생 아르투어와 그가 아끼던 새끼 여우였다. 자기들보다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 아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평생토록 그 일을 비밀에 부칠 것을 서로 약속한다. 코흘리개 꼬마들이 5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루퍼츠하인 인근 캠핑장에서 중년의 남자가 화재로 사망한다. 그 후에 지역에서는 의문의 살인이 이어진다. 강력반 수사반장이자 아르투어와 단짝이었던 보덴슈타인은 다시금 40여 년 전에 고향마을 숲속에서 벌어졌던 그날을 들춰보기 시작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루퍼츠하인의 수십 년에 걸친 사연을 만나게 된다. 10대 초반이었던 친구들은 중년이 되었고, 그들은 서로 결혼하고 이혼하고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무성한 이야기를 쌓아두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부모, 형제, 자식들까지 빼곡하게 출연해서 책장을 빈틈없이 메운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스토리지만, 서사의 여왕 넬레 노이하우스답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낸다. 등장인물도 많고 각자의 증언도 빽빽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에는 일주일 정도 독일 시골 동네에서 살다 나온 느낌마저 들게 된다.     


 얼마 전 김혜수 주연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면서 ‘촉법소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 처분을 받는다’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나이가 적으면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범죄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특히나 아직 세상살이 경험치가 부족한 시절에 저지른 악행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요즘 사회적 분위기는 어리다고 무조건 관대한 판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고, 나도 이에 적극 동의한다. 어떤 연령이건 잘못을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와 피해 가족에 대한 위안이 될 수 있고, 길게 보면 가해자도 부담을 덜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에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민 온 아르투어란 소년이 피해자로 나온다. 도덕 책 같은 이야기지만 사회가 성숙할수록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한국처럼 절대다수가 단일한 민족으로만 구성된 나라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문화 환경에 노출되었던 경험이 적고, 이해가 깊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았다. 겉으로만 교양 있는 척하고 속으로는 나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했다.     


 독일어 원제는 ‘Im Wald’, 즉 ‘숲속에서’라는 뜻이다.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여우가 잠든 숲’인데 이 제목이 몇 배는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용을 잘 대변하고, 은유적인 의미도 여러 가지로 음미할 수 있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숲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애써 깨우지 않는 마음속 여우가 여러 마리 있다. 나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도움이 필요했던 주위를 못 척했던 일은 여러 번이었다. 조금의 해도 보지 않으려고 비겁하기만 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여우를 깨우기가 무서웠다.     


[ 면도를 하지 않은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타고 내렸다. “아르투어가... 우리를 소리쳐 불렀어요. 도와 달라고... 난... 한 번 더 돌아보기는 했지만... 그냥... 죽을 때까지 그 모습은 잊지 못할 겁니다. 아르투어가 바닥에 누워서... 죽은 여우를 품에 안고... 우는 모습은 영원히...” 그의 얼굴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난 더 이상 거울을 볼 수 없었어요. 너무 비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일을 후회했고 벌도 받았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때 일은 42년 동안 매일 무거운 납덩이처럼 가슴속에 남아 있었으니까요.” -넬레 노이하우스 ‘여우가 잠든 숲’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에게 잘 해야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