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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Nov 07. 2022

아내에게 잘 해야하는 이유

더글라스 케네디 '더 잡'을 읽고.

최근에 학교 도서관에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조동섭 옮김)을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하지 않고 초반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페이지터너였다. 위기에 빠진 세일즈맨 이야기에 이틀동안 풍덩 빠질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와 엘지 트윈스 가을야구 광탈로 어수선했던 기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그의 대표작 ‘빅픽쳐’보다도 몇 배는 더 매력적인 스토리였다.


 잡지사 광고판매 책임자인 네드 앨런은 다니던 회사가 인수합병되면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정리해고 과정에서 부하직원들을 대변해 주다가 업계에서도 완전히 매장된다. 네드는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닿는다.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네드를 고등학교 동창인 제리가 구해준다. 그는 네드에게 지낼 곳과 높은 연봉의 일자리도 구해준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네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범죄와 관련 있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발을 빼고 싶었지만 이미 수렁에 빠진 상태였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네드는 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고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목숨 걸고 정면돌파해 보자고 결심한다.


 직장에선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난 주인공의 주머니 속엔 7달러뿐이었다. 누구나 춥고 배고플 때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작은 친절에도 쉽게 감동하는 법이다. 바로 그 순간이 예상치 못한 위험이 일상을 덮치는 타이밍이다. 누구라도 야비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덫에 발을 헛디딜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재수 없으면 어느 순간 검은 돈가방을 들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고 그를 응원하게 된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네드의 아내인 리즈다. 그녀는 직장을 잃은 남편을 위로하고 대신 생계를 짊어진다. 남편이 사기당한 걸 자신에게 숨기고, 하룻밤이지만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것을 알고 화를 낸다. 그래도 네드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이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편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네드는 아내를 걱정하지만, 막상 위험한 순간에는 리즈가 대담한 행동으로 남편을 구해낸다. 어리석은 남편을 구제할 수 있는 건 결국 아내밖에 없다는 오래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책상물림 네드가 겁내지 않고 범죄조직에 승부수를 띄우는 장면부터는 책장이 더욱 빨리 넘어간다. 마지막에 네드는 리즈에게 예전에 데이트했던 장소에서 기다리겠다고 쪽지를 보낸다. 자신을 용서한다면 나와달라고 한다. 그 커플이 다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내님에게 연말에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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