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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Feb 01. 2023

'내 인생의 소중함'을 알게해준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원래는 독어독문학을 전공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수의학과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저녁노을을 아래, 퇴근하는 진료차 안에 가끔 생각하곤 한다. 그냥 문학 전공자로 계속 살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30대 여성 로라의 삶은 엉망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지만 얼마 전에 파혼했다. 한 명뿐이었던 피아노 제자는 그녀의 불성실함 때문에 레슨을 그만 받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때쯤 일하던 악기 상점에서는 해고를 통지받았고, 정을 나누던 반려 고양이는 집 앞 길가에 죽어있었다. 세상과 이어주던 끈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약을 먹고 와인을 들이킨 다음 다시는 깨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잠에 든다. 자정쯤에 그녀는 자신의 침대가 아닌 도서관에서 눈을 뜬다. 사서로 일하는 중년 부인은 이곳이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다고 설명한다. 여기 서가에는 로라가 그동안 선택하지 않았던 인생들이 가득 꽂혀있다고 말해준다.


 그녀는 그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었다.  음악밴드를 계속해서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어  남미로 순회공연을 다닌다. 혹은 파혼을 하지 않고, 다정다감한 남자와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계속해서 교수되는 선택도 있다. 모두 그녀가 그려보던 삶이었지만, 그 일상에도 나름의 고충과 아쉬움은 묻어 있었다. 예컨대, 팝스타가 되는 인생에서는 밴드 멤버였던 친오빠가 죽어있었고, 행복해 보였던 결혼 생활은 남편의 불륜으로 얼룩져있었다. 빙하학자가 돼서 극지방을 탐험할 때는 북극곰에게 쫓기는 경험도 한다. 사서는 로라에게 알려준다. 도서관에서 읽어본 인생이 맘에 들면 그 삶 속에서 그대로 계속 살아도 된다고.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싫었던 현재의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쯤 읽으면 우리는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굳이 마지막 장을 넘기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비슷한 설정의 소설, 영화, 드라마가 그동안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보지 못했던 길이 아쉽긴 하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내 인생’이 가장 행복했다는 걸 주인공들은 깨닫게 된다. 어떤 길에 들어서도 행복과 불운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법칙도 눈치채고 말이다.


 매번 똑같은 교훈을 얻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책 덕분에 독자들은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는 삶을 대리 체험해 볼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해보기 때문에, 이런 스토리는 겉모습만 달리한 채 끊임없이 소비된다. 로라의 결정을 지켜보면서 지루해 보이는 나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된다. 다시금 신발 끈을 조인다. 그 흔한 새해 작심삼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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