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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May 05. 2023

찾는 사람이 임자!

스티븐 킹  '파인더스 키퍼스'를 읽고.

Finders Keepers,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뜻이다. 제목이 선명해서 맘에 들었다. 작년에 ‘미스터메르세데스’ 라는 소설을 읽은 적 있는데 그 속편이다. 스티븐 킹이 쓴 형사물인데, 빌 호지스라는 은퇴한 경찰이 주인공이다. 현역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동내 양아치 두세 명쯤은 제압할 수 있는 완력이 남아있고, 범죄의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은 여전하다. 수많은 악당들을 상대하면서 쌓은 경험치도 만렙이다. 이제는 조그만 뛰면 숨이 차고 가슴엔 심장박동기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여자 앞에서는 수줍어한다. 일 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니 오랜 옛 친구를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이야기는 존 로스스타인이라는 (가상의) 전설적인 작가가 은둔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소설 ‘러너 시리즈’로 문단과 시장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그 후에는 더 이상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모리스가 로스스타인을 찾아가서 그를 죽이고 후속편의 원고를 빼앗는다. 범인이 원했던 것은 유명 소설가의 돈이 아니라, ‘러너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였다. 작가와 소설에 대한 열정이 살인 동기라는 점이 상당히 새로웠다.


사건의 전개 역시 기발하다. 레전드 급 소설가가 살해된 채 발견되자 나라가 발칵 뒤집힌다. 모리스는 빼앗은 원고와 돈다발을 트렁크에 넣어 마을 황무지에 묻어두고 사건이 잠잠해지면 되찾으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일에 얽혀서 감옥에 갇히고, 땅속에 묻어둔 속편을 읽기 위해서 거친 수감생활을 견뎌낸다. 그런데 숨겨놓았던 트렁크를 같은 동네에 살던 평범한 고등학생 피트가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번져나간다. 당시 피트네 집은 경제난이 심했다. 바닥난 통장 때문에 부모들 간의 싸움이 잦았고, 여동생은 사립학교에 다닐 수 없어서 좌절한다. 어렸지만 문학적 소양이 있던 피트는 트렁크 속 원고의 가치가 보통이 아님을 파악한다. 가족, 특히 자기 방에서 흐느끼고 있는 여동생을 보면서 피트는 원고 뭉치를 들고 목숨을 건 거래에 나선다. 한편 기나긴 징역형을 마친 모리스는 꿈에 그리던 후속편을 고대하면서 묻어놓았던 트렁크를 열어보았지만 비어있었다. 원고의 행방을 알아낸 모리스는 또다시 범행을 계획한다. 오로지 자신의 우상이었던 존 로스스타인의 남겨진 글을 읽기 위해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 미국 아저씨 정말 수다스럽다고 느껴진다. 별거 아닌 장면에도 온갖 디테일과 신변잡기 대사들이 넘친다. 여기에 미국식 농담과 비속어까지 추가돼서 책 두께가 훨씬 늘어난다. 그래서 책장 넘기는데 방해될 때도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깨알같은 서술마저 모두 각막에 척척 들러붙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개성 있고 매력적이었다. 빌 호지스는 턱밑 수염이 까칠까칠하고 가까이 가면 냄새가 날 것 같은 중년 남자지만 사회적 약자나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비록 배는 나왔을지라도, 외출을 준비하는 여자를 끈기 있기 기다려 주고 차 문을 열어주는 매너도 잊지 않는다. 범인으로 나오는 모리스 벨러미의 어린 시절 지켜보면서 그가 사이코패스로 성장하게 된 이유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삐뚤어진 팬심이 어떻게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도 지켜볼 수 있었다.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한 가족을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에 나서는 고등학생 피트 소버스도 사랑스러웠다.


스티븐 킹을 흔히 ‘이야기의 제왕’이라고 하는데, 막상 읽어보면 재미없거나 ‘이게 뭐야’하는 소설도 많다. 하지만 ‘파인더스 키퍼스’는 내가 접해본 그의 작품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흡입력 있고 완성도가 높았다. 미스터메르세데는 총 3부작인데, 여름방학하면 시리즈의 마지막인 편인 End of Watch(임무완수)를 읽을 것을 결심하면서 책을 덮었다. ‘임무완수’라는 제목이 노쇠하고 심장질환에 시달리는 호지스 아저씨의 운명에 대해 암시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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