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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Jun 06. 2023

한겨울 북풍같은 사내의 사랑 이야기.

위화 '원청'을 읽고.

 린샹푸는 북쪽 사람답게 덩치가 크고 말 수가 적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집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 어느 날 아창과 샤오메이가 찾아온다. 둘은 남쪽 지방 말투를 쓰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남매라 했다. 대도시 먼 친척을 찾아가는 길인데 수레바퀴가 망가져서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냐고 사정한다. 다음날 아창은 여동생이 간밤에 앓아서 움직일 수 없고, 자신만 먼저 떠난다고 한다. 남게 된 샤오메이는 린샹푸가 일하러 나간 사이 집안일을 하고, 베틀로 옷을 지어준다. 하늘에서 대야만한 우박이 쏟아지던 날 둘은 밤을 같이 보내고,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부모님 묘로 데려가 결혼을 알린다.


 혼례를 올리고 변함없이 일하던 린샹푸는 집에 돌아와보니 샤오메이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 린샹푸는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샤오메이에 대한 마음을 접어갈 때쯤, 눈발을 가르며 그녀가 다시 나타난다. 만삭의 샤오메이는 린샹푸의 아이를 가졌으며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린샹푸는 말없이 그녀를 따뜻한 방으로 들이고 다른 일은 묻지 않는다. 얼마 후 샤오메이는 딸을 출산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예전처럼 사라진다. 린샹푸는 집과 땅을 정리하고 젖먹이를 들쳐 안고 샤오메이를 찾아 나선다. 언젠가 샤오메이와 아창이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남쪽 지방 ‘원청’을 향해서 말이다.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소설 ‘원청’을 읽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가장 굵은 줄거리는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엮어가는 사랑이야기였다. 세상에 태어난 남과 여는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만들고, 정을 나누며, 때로는 모진 세월도 겪는다. 아직 어린애였던 샤오메이가 아창네 집에 민며느리로 들어가면서 이들의 운명은 서로 엉키기 시작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 아창과 린샹푸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샤오메이는 먹는 입이라도 줄이려고 10살 나이에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그 작은 손으로 어떻게든 시어머니 눈에 들려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짓는 모습에 내 마음이 다 아렸다. 조그만 잘못으로 시댁에서 쫓겨난 소녀의 심정을 헤아리니, 내가 친정 아빠가 된 것처럼 사돈집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런 샤오메이를 역시 꼬마였던 아창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샤오메이가 시어머니 몰래 꽃무늬 옷을 꺼내 볼 때는 망을 봐주었고, 배에 타서 자리가 불편할 때는 보따리로 등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집안에 돈을 모두 들고나와서 샤오메이네를 찾아가 호기롭게 ‘신부를 다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유복한 집 도련님으로 자라서 생활능력은 없었지만, 샤오메이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아창의 행동을 보면서 다정한 말한마디, 작은 배려가 여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다.


 아창과 비교되는 남자로 린샹푸가 등장한다. 우람한 체격의 그는, 목공일에도 능하고 사업 수완도 있어서 어디를 가든 금방 기반을 닦는다. 한겨울 북풍 같은 성정을 지닌 이 사내는 뜻한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딸을 품에 안고 젖동냥을 하면서 아기 엄마를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샤오메이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원하는 건 그저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여인을 다시 만나는 것뿐이다. 우직한 이 남자의 사랑법 역시 매력적이다.


 600페이지 달하는 장편소설이라 세 남녀의 스토리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리샹푸와 천융량이라는 인물이 주고받는 남자들의 투박한 우정이 인상적이다. 지역 유력자면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구이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겉으론 엄격했지만 맘속으로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그리워했던 시어머니의 사연도 감동적이었다. ‘토비’라고 불리는 도적 무리가 사람을 해하는 장면은 너무 잔인해서 읽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세 남녀의 굴곡진 사랑과 역경, 그리고 죽음을 따라가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샤오메이가 떠올린 남자가 누구였을지도 궁금했다. 세상살이에 상처를 입지만 언젠가는 아물고 슬픔도 지나간다는 걸 배웠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길에 무엇이 행복인지도 계속 궁금했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따뜻한 장소, 가고 싶은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어디일까 물어보았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원청’이 있다고 했다.


 린샹푸는 평생토록 찾아 헤매던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샤오메이와 린샹푸는 죽어서야 아주 잠깐 재회한다. 린샹푸의 관을 실은 수레가 샤오메이의 묘지 옆을 지나게 된 것이었다. 주책바가지처럼 오랜만에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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