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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Jul 02. 2023

북유럽에서 온 웰메이드 추리소설.

스티그 라르손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읽고.

습하고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구름에 가려서 해도 없는데, 밖에 서있으면 금세 목덜미에 땀이 흐른다. 이럴 때는 추리소설이 제격이다. 눈발 날리는 북유럽이 배경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읽었다. 그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1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작년에 읽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우연히 속편을 집어 들게 되었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다시 등장한다. 900페이지 분량인데 여름밤에 풍덩 빠져들었다. 할 일도 많은데 자꾸 내 수면시간을 갉아먹었다. 후회하진 않는다.


 불법 성매매에 관한 심층보도 기사와 연구 논문을 준비하던 부부가 살해된다. 이들은 미카엘의 잡지사 ‘밀레니엄’과 협력하던 사람들이었다. 피살된 현장에서 리스베트의 지문이 남아있는 권총이 발견된다. 그녀는 1편에서 천재적인 해킹능력으로 미카엘을 도왔던 인물이다. 경찰과 언론은 리스베트를 의심하지만 미카엘을 비롯한 지인들은 그녀의 범행을 믿지 않는다. 리스베트는 공권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추적당하는 와중에 범죄조직으로부터도 표적이 된다. 이에 리스베트는 도망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악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미카엘도 리스베트를 돕기 위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그러면서 그녀의 불우한 성장 배경과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리스베트와 미카엘은 음모의 배경에는 ‘살라’라는 인물이 숨 쉬고 있음을 알아내고, 그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작가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언론사 기자 출신이다. 소설책 곳곳에 성매매, 납치, 변태 성착취, 아동학대 등에 대한 사회문제를 녹여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접근 방향이 서로 다른 경찰, 언론사, 보안회사, 국가기관의 움직임을 모두 챙겨볼 수 있었다. 꼼꼼하게 취재된 기자수첩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야기의 농도가 더욱 짭짤해졌다고 느꼈다. 세계최고 수준의 복지와 행복지수를 기록하는 스웨덴이지만 뒷골목 풍경은 악취가 진동했다.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시사 문제를 다루면서도 스토리 자체의 완결성과 속도감도 잃지 않는다. 범인이 과연 누구일까 하는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맨손 격투, 총격신, 카 체이싱과 같은 액션 및 첩보물의 매력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메인 빌런 ‘살라’의 정체가 공개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반전과 재미가 대단했다. 누워서 읽다가, 너무 놀래서 책을 놓칠 정도였다. 무거운 책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소설가가 정말 오랜 시간을 두고 공들여 썼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일도 쌓여있고, 피곤해서 자야 하는데도 자꾸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스티그 라르손은 애초에 ‘밀레니엄’ 시리즈를 10부작으로 계획했으나 1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3편 ‘벌집을 발로 찬 소녀’까지만 남기고 애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살아 있어서 끝까지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다. 그랬다면 정말 추리액션스릴러소설 시리즈의 고전으로 길이길이 남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3편을 펼치기가 두렵다. 달콤한 잠과 대하 추리소설의 유혹 사이에서 또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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