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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May 11. 2023

말수의사의 봄

강심장 기르기

5월에 갑자기 폭우가 내리더니, 비 그치고는 날씨가 정말 좋다. 지난 포스팅에도 썼지만 예년에는 어린이날을 지나면 웬만큼 번식 업무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올해는 일이 오히려 더 늘어만 가는 느낌이다. 임신도 잘 안되고, 새끼를 가졌던 말들도 중간검사에서 유산이 확인되고 그런다. 그런일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말수의사는 체력관리가 중요하지만, 그만큼 강심장도 길러야 한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하는 초음파 검사인데, 그럴 때마다 심판대 위에 선다. 배란이 되거나 안되거나, 임신이 되었거나 안되었거나, 자궁 속 태아가 잘 크고 있거나 아니거나 등이다. 그래서 번식철에는 하루 종일 심장 위를 걷는다.


이제는 제법 경력이 쌓였지만 아직도 평온함을 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도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하고 노력한다. 내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결과는 그런가 보다 한다. 봄에는 인텐시브하게 바쁘지만, 그 외 계절에는 남들에게는 바쁜척하면서 은근히 땡땡이도 칠 수 있다. 그런 생각 하면서 버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이 일 자체에 매력도 있다. 내가 생산이나 진료에 관여했던 말이 1등으로 들어오면 좋다. 담당 농가 말이 큰 경주를 먹으면 걔가 엄마 난포에 들어있던 시절 기록도 들춰보곤 한다. 젖먹이 시절 탈수, 고열, 폐렴 등은 앓지 않았었나도 찾아본다. 사실 대상경주 우승은 고사하고, 일반 경주에서 5등 안에 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조그마했던 망아지가 장성해서 훈련받고 무사히 경주를 완주하는 것만도 대견하다.


​뭐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히 명예로운 일도 아니고, 뭐하러 새벽녘에 나와 저녁놀 질 때까지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칠 때가 있지만, 육성마들이 다 커서 경마장 입사하는 것 보면 보람차다. 한 달 정도만 더 힘내서 돌아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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