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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14. 2023

젊은 여자 직장인들의 일상을 엿보았다.

'달까지 가자'를 읽고.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마론제과라는 중견업체에 다니는 다해, 은상언니, 지송이라는 직장인 이야기였다. 이들은 공채 출신이 아니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친해진다. 연봉 인상분은 물가 상승률을 따르지 못하고, 나름 열심히 일하는데 인사평가는 매년 ‘무난’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회의감이 몰려올 때쯤 이들은 가상화폐,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러디움 시장에 발을 들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 휴양지에서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만 매달리게 된다.


 월급을 털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거나 영끌해서 미국주식에 올인한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쟤들 저러다가 쪽박차고 말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묘한 박탈감이나 불안감도 있었다. 나만 바보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면서 말이다. 투자로 대박이 나서 강남에 빌딩을 샀다느니, 30대에 벌써 경제적 자유를 얻고 퇴사해서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등의 후일담에 속도 쓰리곤 했다. 소심한 안전제일주의자인 나는 그 판에 관심조차 없었다. 대학생도 한다는 주식도 한번 거들떠보지 않았다. 성향도 맞지 않을뿐더러, 귀찮기도 했고. 그저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해서 맘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 ‘시골쥐와 서울쥐’ 그림책 읽었을 때부터 난 시골쥐의 삶이 더 맘에 들었더랬다.


 이 책이 나에게 정말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20대 후반 여자 직장인으로 40대 아저씨 자영업자인 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디서 커피를 마시고,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언어를 쓰고, 휴가는 어떻게 보내는지 지켜보면서 신기했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의 발상과 표현법은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여러 번 느꼈다.


 본의 아니게 한 번도 회사를 다닌 적이 없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 먹으러 빌딩 사이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밥먹으로 가면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연봉협상, 승진, 인사고과 등 고전적인 직장인들의 관심사부터 권력 다툼, 줄 서기, 능력없는 상사 이야기까지 내밀한 속마음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우가 다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식 사원 중에서도 공채 출신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벽이 존재한다거나, 무기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한다는 것도 책장을 넘기며 알게 되었다.


 마론제과 비공채출신 사원 세명은 이러디움을 타고 달까지 갈 수 있었을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배짱이들은 한겨울 추위에 거리에 나앉는다는 교훈적인 가르침의 시대는 지나버렸다. 사실 결말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그녀들이 풀어내는 속 사정, 말투, 고민 등이 대단히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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