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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06. 2023

사람 관계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후기

건축가였던 아버지는 총명했던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은근히 바란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보다는 예술 쪽에 관심을 보인다. 피아노에 빠지고 음대를 지망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못마땅해 하지만, 중간에서 엄마가 열심히 아들 편을 들어준다. 엄마 덕분에 원하던 학과에 왔지만, 아들은 동기들의 엄청난 재능을 보니 자신의 연주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결국 집에 알리지도 않고 자퇴하고, 거리의 극단에 들어간다. 자연히 집과의 왕래는 서서히 끊어진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길거리 공연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아들 손에 봉투를 쥐여준다. 진로에 대한 좌절과 정처 없는 생활의 피폐함 때문에 아들은 점점 술에 의지한다. 알콜중독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망가지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지자 요양원에 들어간다. 의식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상태에서도 아들은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쯤 영험한 능력이 있는 녹나무에 대해 전해 듣는다. 그믐달이 떴을 때 그 녹나무를 찾아가서 ‘기념’을 하면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었다. 관계와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진다. 생각만 해도 애닮은 자식에게 너무 많은 기대로 무거운 짐을 지운 건 아닌지 후회한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늦둥이 자식에게 아직 전하지 못했던 가르침을 나이 든 아버지는 녹나무에게 맡겨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던 아쉬움을 잘 극화劇化했다. 세월을 되돌리고 싶지만 누구도 거스를 순 없다. 대신에 눈가에 주름만 깊어질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때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서 보냈어야 했는데 후회했다. 마지막에 좀 더 이쁘게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반성했다. 너그럽게 모른척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때가 지나면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되찾으려면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걸 자주 잊곤 한다. 지금 곁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같이 밥 먹고, 때로는 여행길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가지는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다. 길거리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을 아들을 걱정하던 엄마는 인지증에 걸려 기억을 모두 잃는다. 하지만 아들이 치던 피아노 선율만은 기억해내고 눈물을 흘린다. 오랫동안 녹나무 파수꾼 역할을 하던 노년의 여성은 인지증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후계자를 찾아나선다. 책장을 넘기면서 품위 있게 늙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나도 바로 몇 시간 전에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고, 또 인지증이라고 듣게 될 수 있다. 바로 그때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노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연휴 때 읽었는데 신비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추석하고도 맞아떨어졌다. 달밤에 커다란 나무에게 무언가를 기원한다는 설정이 더더욱 추석을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신비한 녹나무가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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