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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03. 2023

추석선물로 받은 추리소설

넬레 노이하우스 '영원한 우정으로'후기.

추석 직전에 목장에 갔다가 명절선물을 받았다. 목장 사장님이 장보러 나섰다가 책 파는 곳을 보니 내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경마장이나 시내에 있는 동물병원이 아니라, 서점을 지나치다가 담당 수의사가 떠올랐다니 좋은 건지 어떤건지 모르겠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너무 고마웠다.


 목장에 진료나 검사하러 갔는데 말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차에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스마트폰으로 쓰다만 글을 고칠 때가 많다.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즐기지 않고, 골프도 안치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책 읽고, 또 뭔가 할 말이 있으면 독후감 쓰고 그게 낙이다. 그리고 타이밍이 되면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은 꼬박꼬박 챙겨 다닌다. 물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빠져 허망하게 시간을 날릴 때도 다반사다.


 이번에 받은 책은 현시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작이었다.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소설로, ‘타우누스 형사 시리즈’ 열 번째 이야기다. 그녀의 작품은 이 외에도 미중부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셰리든 시리즈 3부작’과 뉴욕 배경의 금융 스릴러 ‘상어의 도시’까지 14편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나는 그 모든 책을 읽었고, 반 이상은 종이책으로 구매도 했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별장으로 독일의 고성古城을 구매할 때 벽돌 한 장 값 정도는 보탰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독어독문과 다녔을 때, 그녀와 같은 독일 작가가 있었더라면 나의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영원한 우정으로’는 작가, 에이전트, 편집자, 발행인 등 출판계를 배경으로 사건이 펼쳐진다. 문학 편집자로 이름을 날리던 중년 여성의 살인 사건을 따라가면서, 그녀와 얽힌 여러 이해관계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된 우정까지 조명된다.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쏟아내는 대사량도 엄청나다. 필력이 워낙 뛰어난 작가라 보통은 그 방대한 서사도 짧은 듯이 느껴지곤 하는데, 이번에는 중간에 다소 늘어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70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연속성 있게 잘 마무리되고, 비밀이 드러나는 끝으로 갈수록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다시 빨라진다.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친구관계는 오래갈 수 없으며, 무덤까지 가는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귀결된다. 씁쓸하지만 더 현실적인 결말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추석 연휴도 끝나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시골에서 조그만 동물병원을 개원한지도 어느새 13년 정도 되어 간다. 그동안 물론 속상하거나 악당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평균을 내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우정’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 그러지 말고 만날 수 있을 때 조금 더 친절하고, 한 발 더 양보하고 그러는 게 서로에게 부담도 없고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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