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여간 교생 선생님이 학교로 출근을 했었습니다. 학생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있었지요. 교육활동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위해 저마다의 개성과 위트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실습을 나왔을 때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적용하기 쉽지 않은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도 하지 않은지 몇 년 된 듯합니다. 이제는 낯 부끄러운 행사가 되었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간 고생하는 담임선생님에게는 ‘고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학생들도 1달간 다녀가시는 교생 선생님에게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는 학생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함은 교생 선생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지 모릅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계성을 바탕을 생활교육을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구요. 요즘은 주로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봅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판다와 원숭이 그리고 바나나가 있습니다. 이중 두 개를 짝지어본다면 어떻게 짝을 지으실 건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원숭이와 바나나를 짝짓는다고 합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다르죠. 동물은 동물과 공통점이 있으니 판다와 원숭이를 짝짓는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계성을 바탕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이유가 모델인 우리 금융의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나(I)와 너(YOU) ‘우리’라는 표현의 광고가 있습니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문화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가끔은 ‘우리’라는 표현을 너무 많이 써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현도 사용합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와이프’ 등등의 표현 말입니다. 서양사람들의 ‘우리’ 개념은 공유의 개념이지요. 우리나라에서의 ‘우리’는 관계성에 기초한 개념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해석을 하게 합니다.
한동안 코로나19로 인해 관계성을 차순위로 밀어두는 거리두기를 생활화했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해 느슨한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금 이전으로 회복하자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사회가 모두 좋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사람들 간의 관계도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너무 가까워서도 안됩니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죠.
다른 사람과 나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나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이죠. 학생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하고요. 때론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의견의 대립으로 양분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선거를 치르고 나면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른 생각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은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미래교육을 위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고 지원해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