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
아군이란 우리 편 군대를 말한다. 비슷한 말도 있다. 우군이라는 표현이다. 전쟁할 때 사용하는 용어지만 운동경기를 할 때나 응원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말은 적군이 있다. 이분법적 표현이다. 아군과 적으로 나누면 결국 대치상태인 상황을 말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면 둘 사이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적군은 적의 군대나 군사를 말한다. 운동경기에서 상대방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생각을 해보자. 적군의 적은 누구일까? 아군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인들이 잘 쓰는 방법이다. 자신들의 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내편이냐 아니냐를 판단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를 해석하고 이끌어가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분법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오류가 생기기 쉽자.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적군의 적이 과연 아군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생각에 반대를 한다고 해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속된 말로 네 편도 내편도 아닐 수 있다. 제3지대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편에 들어갈 거냐고 묻는 것은 어리 석인 일이다.
많은 경우의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다. 두 개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엄마도 아빠도 승자가 되기 어렵다. 이 말에 대답을 하는 아이들도 심리적인 고통과 압박을 느낀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분법적인 분류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럴 때 등장하는 용어가 적당 함이다. 짬짜면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이것조차 만족스럽지 못하다. 짬짜면은 짬뽕과 자장을 모두 먹을 수 있다. 문제는 두 개 모두 정확하게 먹지 못한다. 적당함을 추구하다가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되기도 하는 이유다.
< 오늘의 한 마디 >
적당한 것도 좋지만
뭐든 하나 정확하게 하는 것도 좋겠네요.
삶은 참 어렵네요.
삶은 계란
삶은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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