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를 다닌지도 20년이 넘게 훌쩍 지났으니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2번이나 바뀌었겠군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의 체벌을 당연히 여겼었습니다. 등교하다가 교문 앞에서 머리 길이로 적발이 되거나,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걸리기도 했고요. 교문 앞에 엎드려있거나 지시봉으로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맞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바라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갑자리 '라테'를 찾는 이유는 뭘까요?
처음부터 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초임교사분들이나 저경력교사들을 볼 때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시행착오라고 하는 게 보통 열정이 앞서서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나오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실수는 아닌데, 정확한 사실이나 절차를 알지 못해 생기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경우는 학생들을 너무 믿고 생활지도를 하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특정한 학생들은 선생님을 잘 이용할 줄 압니다.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요? 어찌 보면 사람 다루는 기술이 풍부한 아이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회생활하는데도 그런 기술들은 도움이 많이 되니 전혀 쓸데없는 기술은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날라리'라고 불리는 '일진'들이 이런 기술을 장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활지도를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나이가 그리 많지 않거나, 임용된지 얼마안되신 선생님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명의 힘센 학생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 다른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어려워집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학급의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학생들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좋은 가르침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휘둘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공정성'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공정성이 틀어지는 경우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아이는 허용되는 것이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학부모님들의 항의를 받게 될 수 도 있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학부모입니다. 선생님이 지도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에 관하여 이해해주는 학부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교권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교총에서도 나서서 '생활지도법'을 추진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학교현장입니다. 선생님이 생활지도로 힘든 것은 선생님들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만들어버린 상황이 잘못된 것이죠. 교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던 생활지도 권한을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며 정치적으로 빼앗아 갔습니다. 학교폭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단어로 학생들의 폭력을 학교의 문제로 결부 지었습니다. 생활지도를 해야하는 교사들에게 체벌을 금지했구요. 물론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할때는 순간의 감정적으로 지도를 하면 안되겠지요.
학교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대부분의경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교육적 생활지도를 하고 있음에도 교사를 아동학대범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한동안 학생 인권을 강조한다는 명목 하에 교사의 교권을 바닥에 떨어뜨려버렸습니다. 학생의 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모두 존중되어야 하지요. 상대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만들어진 오개념으로 교사들이 설곳이 없는 학교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학교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교육을 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사는 학생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조력자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거구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음 놓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