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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May 18. 2020

공항이 그리운 나날들

7년 전 서랍 속에 넣어둔 글을 꺼내다

언젠가 써야지 생각하고 워드에 저장해둔 글이 있다. 너무 오래 지나 이제는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오래된 글을 열어본다. 저장해둔 날짜를 보니 2013년 10월. 독일 여행 당시 쓴 글이다. 요즘 잘 쓰지 않는 글이라 옛 생각도 많이 난다. 글을 쓸 당시 휴가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서 며칠 지내다가 너무 지루해서 갑자기 런던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새벽 비행기라 자정을 갓 넘긴 시간에 택시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외곽 저가항공이 주로 뜨고 내리는 공항으로 빗길을 뚫고 갔는데 바로 눈앞에서 비행기를 놓친 기억이 난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인도 출신의 택시 드라이버와 요금을 두고 흥정을 했는데 몰아치는 비 때문에 길이 너무 험해 그가 돌아가는 길이 안쓰러워 흥정을 포기하고 웃돈까지 얹어서 주고 온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여행자의 사치였다. 겨우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하려는데 비행기 이륙까지는 좀 시간이 남았지만 굳은 표정의 독일인이 "No"라고 단호하게 말해 상처를 입은 기억도 난다. 더 말도 못붙일 정도의 단호한 표정. 그때부터 최소 1시간은 갈팡질팡 고민을 했던 거 같다. 다음 런던행 비행기는 12시간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행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이대로 12시간을 공항에서 보낼까 고민 끝에 결국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세상에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갈이야. 공항에서 맥도날드 햄버그로 두끼를 떼우고 결국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현이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프랑크푸르트 민박집에서 만남 사업가 형이 한국에 와서 현이를 소개해줬고, 그후 2년이 지나 우리는 결혼을 했다. 이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도 함께 있다.


**당시 썼던 글은 이제 저장해두지 않으면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아 이 글 아래 부분에 올려둔다.







//워드에 저장해두었던 7년 전의 글//


3일 오후 1시 30분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난생 처음 타 본 에티하드, 난생 처음 들러 본 아부다비. 처음 밟아 본 ‘열사의 땅’. 공항에서 열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2시 30분. 지금까지 유럽에서 지낸 민박집 중에서 찾기가 제일 쉬웠다. 공항에서 불과 세 정거장인데다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걸렸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출장을 오신 형들이 맥주 두 캔과 함께 반갑게 맞아준다. 샤워와 숙면으로 피로를 푼 후에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7년 전 처음 유럽에 왔을 당시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숙소에서 뢰머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유럽중앙은행(ECB)도 보이고 뢰머 광장을 지나 마인강까지 길을 걸었다. 잠깐 나간 산책이지만 예전에 보지 못했던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든지 처음은 두렵고 낯설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판단력이 떨어지지만 한 번 경험한 것들은 익숙해지는 법이다. 경험의 힘이란. 도착한 첫날부터 주말까지는 독일 통일을 기념하는 연휴가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도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작은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음악과 춤,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밤이었다.


4일 이튿날 아침 .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프랑크푸르트의 가을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10년 만에 가장 추운 가을이라고 한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비교적 날씨운은 좋은 편이었다.  항상 눈부신 햇살이 반겨주는, 그런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딜 가든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날 아침은,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비 오는 프랑크푸르트 거리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이 날은 대학 도시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를 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은 숙소에서 만난 이들과 동행, 오는 길은 혼자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는 따로 흩어졌지만 굳이 가는 길을 함께한 것은 단체로 기차표를 끊으면 할인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15.5유로, 오는 길은 16.5유로였으니 1유로를 아낀 거다(이때만 하더라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애를 썼는데 후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1유로를 아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9시 20분 기차를 타고 10시 40분에 하이델베르크 도착했다.

예전에 하이델베르크를 잠시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가보고 싶은 도시였는데 일정을 잘못 짜는 바람에 밤 여덟 시에 도착해 발도장만 찍고 돌아갔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끌리지가 않았다. ‘끌림’, 늘 이게 문제다. 그렇지만 어쨌든 발길을 하이델베르크로 돌렸으니 뜻하지 않은 행운이 기다리길 기대해본다. 하이델베르크역 도착. 아름다운 도시이자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답게 하이델베르크역은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같이 간 일행들과 헤어진 후, 역무원에게 여섯 시 이후에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갈 기차 시간표를 받고 역을 나섰다. 역을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2.5유로에 ‘원데이패스’를 샀다. 곧바로 33번 버스를 타고, 다시 케이블카를 갈아 타 하이델베르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하이델베르크성으로 이동했다. 줄이 꽤 길어서 하이델베르크성에 올랐을 때는 이미 열두 시를 넘긴 후였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큰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다. 그 동안 수많은 여행 사진과 엽서를 통해 너무나도 많이 봐 온 익숙한 풍경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론,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도 한 몫 했다. 시간이 지나도 해가 나올 것 같지 않아 일찌감치 성 아래로 내려갔다. 각종 상점들과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하이델베르크 거리를 끝까지 걸었다.그리고 다시 90도로 방향을 틀어 강가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의 즐거움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이 반가웠다. 하이델베르크를 관통하는 네카어강을 따라 한가하게 강가를 산책하는 연인들과 사람들, 그리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자전거, 강 위를 흐르는 유람선과 철광석 운반선 등 여러 종류의 배들. 산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보다 오히려 여기서 하이델베르크의 속살을 만난 것 같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카를테오도르다리까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카를테오도르다리 위에는 단체 관광을 나온 중국인들로 가득했다. 산 위에서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특징은 중국 관광객의 경우 가족 단위도 많고, 연령층이 다양한 반면, 일본 관광객은 노년의 관광객이라는 점이다. 그럼 한국인은.. 하이델베르크는 한국인들도 많이 좋아하고, 많이 찾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날 하이델베르크까지 함께 한 이들도 역에서 헤어진 후 보지 못했다. 다리 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독일인은 아닌 듯하고, 동유럽 어디쯤에서 어렵사리 돈을 모아 여행을 함께 온 중년의 여성 두 분이 오래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셀카를 찍고 계시길래 가까이 가서 찍어드리기도 하고. 다리 끝과 끝을 오가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중년의 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휴대폰을 보여주더니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고 한다. ‘안 될 게 뭐가 있냐’며 그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도 내 사진을 찍어줬다. 근데, 이 아저씨 서양 사람들 답지 않게 사진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분명 그 동안 국적불명의 다양한 서양인들이 찍어준 정체불명의 사진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사진을 찍고 자연스레 함께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에릭 스펜서. 그는 칠레인이다. 에릭은 다음주부터 하일브론에 있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대뜸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한국말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10여년 전에 연세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에릭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위치한 칠레 국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전공은 국제 경영학,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바르셀로나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고 한다. 다리에서 내려와 하우프트 거리를 걸으면서 에릭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칠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 나는 한국에서 칠레산 와인과 홍어가 유명하다는 얘기를 했고, 많은 젊은 여행자들이 칠레를 포함한 남미 여행을 꿈꾸고 있다고 말해줬다. 또 그가 축구를 좋아했기에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산체스 얘기를 했고, 칠레의 전설적인 공격수인 유벤투스의 살라스, 그리고 인터밀란의 9번 사모라노에 관한 얘기를 했다. 에릭은 예전에 한국을 찾았을 때 삼겹살과 소주(매우 센 술이라고 했다..)를 마신 기억이 나고, 서울이 너무 커서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에릭은 한국의 재벌에 대한 이야기(재벌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를 했고, 어쩌다 보니 주제가 두 나라의 경제로 빠져.. 각국의 GDP, 빈부격차, 대통령 등 다양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길을 걷는 중간에는 각종 그릇과 부엌 용기, 아기자기한 양초 등을 파는 가게에 들러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도 했다. 물론.. 칠레에선 아내의 힘이 세다며 아내한테 허락 받고 물건을 사야 한다며 최종 구매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아내가 좋아할만한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그렇게 한 30분쯤 함께 길을 걷다가 에릭이 급하게 보낼 보고서가 있어서 숙소로 들어가야 했기에 대신 여섯시에 다시 만나 저녁과 맥주를 함께 하기로 했다. 에릭을 보내고 날이 너무 추워 베네통에 들러 니트를 하나 사서 입었다.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이날 하이델베르크의 날씨는 이 때까지도 흐린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었다. 이 도시는 날씨만 좋았다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아쉬움들은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카를테오도르교로 향했다. 반대편에 있는 철학의 길(철학의 길은 괴테,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독일의 유명한 지식인들이 사색을 위해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을 갈 생각도 했으나, 바로 앞에서 끌리지 않아 마음을 바꾸고 강변을 따라 걷다가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성 반대편 강가에 앉아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으며, 날이 지면서 변해가는 하이델베르크성과 도시의 모습을 감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 보니 조금씩 햇살이 도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과, 햇살을 받은 하이델베르크성과 중세의 건물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시에 약속한 장소에서 에릭을 만나 ‘Nordsee’라는 곳을 찾아갔다. 프랜차이즈 시푸드 전문점이다. 나는 삶은 연어와 생선튀김을 시켰고, 에릭은 감자튀김과 이름모를 생선을 시켰다. 각자 맥주 한 병씩을 함께 하며. 계산은 물론 각자 했다. 후에 맥주가 모자라 두 병을 더 시켰는데 이 때는 에릭이 샀다. 걸으면서 했던 대화의 주제가 각자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 경제, 정치 등 조금 딱딱한 이야기였다면 저녁 테이블의 대화 주제는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에릭은 27, 26인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었다. 그가 아내와 딸들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다들 미인이었다. 아내랑은 대학 시절 첫 눈에 보고 서로를 알아봤다고 한다. 큰 딸은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대학시절 애를 많이 썩였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는데 그 이유가 한국과 너무 비슷했다. 큰 딸이 대학 시절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해장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마다 에릭은 내일을 생각하고 술을 마시라고 충고를 했고, 딸은 이런 게 바로 대학생의 젊은 문화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창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아직 결혼을 안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을 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에릭은 매치메이커가 필요하냐고 계속 물었다. 에릭과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하고 8시 20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정신 없이 졸았다. 역무원이 표 검사도 안하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5일 비 오는 프랑크푸르트. 예정대로라면 체코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어제 하이델베르크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바꼈다. 체코 여행이 그렇게 큰 감흥으로 다가올 것 같지 않았다.  중세 유럽의 풍경이 아닌, 그리고 비가 오지 않는 곳을 찾았다. 새로운 곳이 아닌 예전에 갔던 좋았던 곳 중에서 후보지를 꼽았다. 리스본, 표가 없었다..런던, 예전에 런던 근교 바스 기차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낯선 기차역에 선 기분,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하는 것도 좋았고 도시 자체도 너무 좋아서 기대보다 훨씬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다시 되살리려고,

그래서 테마를 런던 근교 기차 여행으로 잡고 여행지를 물색했다. 옥스포드, 캠브리지. 오래된 대학 도시 끌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세븐시스터즈와 브라이튼을 발견했다. 바로 이곳이었다. 문제는, 이날 바로 런던으로 떠나기에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때 갔어야 했다. 조금 더 싸게 가겠다고 일정을 하루 늦췄는데 결국 훨씬 더 비싸게 주고 런던을 가게 됐다.. 다음날 새벽 여섯시 30분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에서 출발하는 저가항공 라이언에어 티켓을 예매하고, 하루를 더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날 프랑크푸르트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애초에 도시 구경은 안되겠다 싶어 노트북을 가지고 근처 카페로 갔다. COFFEE FELLOWS. 독일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한다. 카페에 딱 하나 있는 콘센트 꼽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카페라떼 한 잔과 슈거도넛, 괜찮았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휴가 기간 중에 보내야 할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비 오는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나섰다. ECB를 지나 뢰머 광장을 거쳐, 통일 기념일을 맞아 사람들이 거리 가게에서 먹거리와 술을 즐기고 있다. 나도 그들과 섞여 소시지와 콜라 한 잔을. 피곤해서 그런지 맥주를 마시면 알딸딸한 기분이 느껴져서 낮에는 첫날을 제외하고 웬만하면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생각보다 여러가지를 구경했다.


***이 사이에 런던을 다녀왔는데 기록이 없다.


10일 오후 2시 20분. 하노버로 가는 ICE 기차 안에 역방향으로 앉아 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독일 중년 아저씨. 마른 체구에 테가 없는 사각형의 안경을 쓰고, 하루 이틀 면도를 하지 않은 듯 수염이 자라있고, 한 손으로 이마 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채 펜으로 열심히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작업을 하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


어젯밤 런던 마너하우스(MANOR HOUSE) 역에 있는 숙소에서 11시 40분쯤 지하철 막차 즈음해서 나와 빅토리아 역으로 향했다.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아침 7시 20분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런던으로 들어올 때 비행기를 놓친 경험이 있어, 어차피 새벽에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날은 숙박을 하지 않고 민박집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한 후 밤에 머물다가 바로 공항으로 갔다. 빅토리아역 기차역에서 코치(버스)역으로 이동. 5분 정도 걸린다. 빅토리아 코치역은 대학시절 텍사스서 런던으로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도착했던 역이다. 벌써 7년 전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빅토리아 기차역은 당시 런던에서 맨체스터 가능 기차를 탔던 곳. 숙소 근처 토튼햄 헤일 근처에서 스탠스테드로 가는 기차가 있었지만 굳이 코치를 택한 이유는 최대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차피 공항 가서 노숙을 해야 했으므..7년 전 뉴캐슬 공항 노숙 이후 처음이다. 그때도 라이언에어였지. 이놈의 라이언은 항상 공항도 시간도 참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싼 값에 예매를 하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제 값을 한다는. 싼 게 비지떡이라고.


빅토리아 코치역에서 10일 새벽 1시에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런던 시내를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런던의 밤 거리를 구경을 좀 하다가 런던을 벗어나자 바로 잠이 들었다. 잠깐 잠 들었다 깨니 어느새 스탠스테드 공항.. 공항에 도착하니 웬 노숙자들이 이리 많은지.. 다들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미리 공항에 와서 아무 데나 자리 깔고 자고 있었다. 나도 남는 의자가 없어 아무데라 자리를 잡고 두 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니 체크인 창구 앞에 어느새 사람들로 한가득. 체크인 후에 남는 파운드를 처리하기 위해 기념품을 몇 개 구입하고, 코스타에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한 잔 마셨다. 출국 게이트까지는 꽤 멀었다. 저가항공은 늘 이랬던 것 같다.. 42번 게이트에서 기다리는데 라이언에어 직원이 가방이 두개라고 지적을 한다.. 백팩 하나와 운동화를 넣는 천조각 하나를 들고 있는데 그것도 가방이라니.. 별 수 없이 백팩에 구겨 넣는다. 지퍼가 잠기지 않은 채로. 어쨌든 모양은 하나니 라이언에어 직원도 더 이상 별말을 안 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미러지를 훑어봤다. 하나에 50센트. 영국 신문들은 확실히 우리나라 신문들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일 면에는 은퇴한 파일럿에 대한 기사가 톱 자리에 있고 아무튼. 별나다. 정치, 경제 얘기는 안드로메다로. 물론, 미러지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간에 명사들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 영국과 관련된 인물들, 알렉스퍼거슨, 다니엘 크레이그, 웨인 루니 등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했다. 루니는 해리포터란다.. 그리고, 요즘 핫 한 아스날의 아론 램지에 대한 기사고 있고. 웨일스의 왕자 램지가 그 동안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올해 마침내 잠재력이 터지면서 자신을 증명했다는 내용이다..


7시 20분. 이륙 시간이 지났는데도 비행기는 도무지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의 불평소리가 들린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라이언에어 남자 승무원이 기내에서 나눠주는 무료 잡지를 5파운드며 농담 따먹기를 하며 승객들을 달래려고 하는데 독일인들. 그닥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몇몇 독일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남자 승무원이 계속해서 조크라며 승객들을 달랬다. 기다리다 지쳐 잠시 잠이 들었는데 옆에 앉은 영국애랑 동시에 잠이 들었다가 깬 것 같다. 일어나더니 나보고 프랑크푸르트라고 묻는다. 나도 잠이 들었는데 한 참 지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해줬다. 잠들기 전이랑 주변 풍경이 너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그대로 스탠스테드였다.. 비행기는 무려 30분이나 늦게 떴다.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에 도착한 시간도 당초 예상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EU 내 국가 이동이기 때문에 입국 심사는 간단. 왜 왔니. 얼마나 있니. 최종 목적지는. 한 공항을 나서는데 또 다리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버스가 유일한데 한 시간에 한 대씩 있고, 10시 30분에 있는 버스는 표가 다 나갔단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는 한 시간. 나뿐만 아니라 같이 비행기에서 내린 독일인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일부는 기다리다 못해 합승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4명에 200유로. 일인당 50유로씩 낸 셈이다. 버스를 탈 경우 14유로. 세 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승객들이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뜨리자 버스 회사에서도 수를 내서 여유분의 버스를 가져온다. 결국 11시께 한 공항에서 중앙역으로 출발. 프랑크푸르트 메인 공항을 거쳐 중앙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 애초에 브레멘에서 회사 연수를 받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11시 50분께 브레멘 행 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브레멘까지는 네 시간 정도 걸리기에 브레멘을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나 결국 가기로 결정. 어차피 이 날은 숙소를 잡아두지 않았고, 프랑크푸르트는 지금 도서전이 열리고 있어 숙소 잡기도 마땅치 않다. 기차표를 사야 했다는 비용 부담 때문에라도 다시 생각해 봤겠지만 운이 좋게도 런던으로 떠나기 전 숙소에서 만난 형이 4일 남은 독일 기차패스를 남겨두고 떠나셨다. 표와 함께 패스포트를 제시해야 한다고 적혀 있지만 패스포트는 거의 요구 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기차를 탔다. 패스포트 요구하면 숙소에 두고 왔다고 하며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까지 급하게 들어가 짐을 풀고, 머리 감고 발만 씻은 후에 다시 중앙역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도 하나 먹고. 역에서 스타벅스 커피도 한 잔 뽑은 후에 기차를 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브레멘까지 바로 가는 기차는 없고, 하노버에서 한 번 갈아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른 길. 1시 58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출발해서, 하노버를 거쳐, 5시 51분에 브레멘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다. 지금. 중간에 역무원이 표 검사를 하는데 조금 긴장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패스포트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짙은의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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