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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Feb 05. 2021

다시 발견하는 건축가 '김중업'

종로 삼일빌딩, 군산시민문화회관, 그리고 계속되는 이야기들

건축가 김중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인 김수근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건축가로 자주 거론된다. 김중업과 김수근 두 사람은 각각 1922년, 1931년생으로 나이 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건축가다. 그런데 두 사람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와 평가는 차이가 있다. 김수근은 그간 여러 차례 조명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지만 김중업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전에 건축가 김종성 선생님과 팟캐스트에서 한국의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먼저 한국의 1세대 건축가에 대한 정의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1세대 건축가는 1910년대 후반에 출생해서 일제 강점기에 경성고등공업학교, 지금 공과대학의 전신에서 건축 공부를 한 분들 또는 일본에 유학을 가서 일본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활약한 사람들을 1세대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_건축가 김종성


김중업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중업도)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대에서 강의를 했었고 한동안은 홍익대학교에서도 건축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1952년에 정부 대표로 유네스코 총회를 참석했는데 그때  (김중업에게) 운명적인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크 총회에서 김중업이 모던 건축의 3대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겁니다. 김중업이 그 자리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아뜰리에에 가서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르 코르뷔지에가 흔쾌히 수락해서 프랑스로 가게 된 겁니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상당히 중요한 여러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어요."_건축가 김종성


참고로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건축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듈러 이론을 포함해 '주택은 삶을 위한 기계'라고 표현하는 등 상당히 혁명적인 슬로건을 많이 이야기했다.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 제자다. 르 코르뷔지에는 지금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건축계 및 공간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지만 김중업은 한국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실제 내가 김중업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다.) 필자가 주로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과 주관적으로 정리한 생각이다.


조명 받지 못했던, 어쩌면 불운했던 김중업


두 건축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건축가 김종성(1935년생) 선생님은 종종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김수근에 비해 김중업은 전반적으로 크게 조명 받지 못하고 불운한 생을 살았다고 보고 계셨다. 김종성 선생님뿐만 아니라 한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김중업은 1970년대 초 와우아파트 붕괴와 성남시 재개발 정책 등을 비판하면서 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쫓겨나듯이 프랑스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또 한국 건축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승효상 이로재 대표를 비롯한 숱한 제자를 거느린 김수근과 달리 김중업 건축가는 상대적으로 제자들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제자들이 스승의 건축을 조명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반면 김수근의 경우 대학로 샘터 건물(현 공공일호), 르네상스 호텔(현 센터필드), 정동빌딩 등을 설계하면서 한국 건축계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건축가지만 한편으로는 남산 안기부 건물이나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하고 관에서 주도했던 대형 개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개발독재 시대의 아픈 유산을 남긴 건축가이기도 하다. 건축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그의 명암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수근 건축가의 공만 강조되고 과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김중업은 명암을 떠나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 대사관, 삼일빌딩 등 한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숱한 건축물을 설계했음에도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서 재발견되는 김중업

단암빌딩, 삼일빌딩, 군산 시민문화회관, 안국빌딩..


그런데 최근 김중업 건축가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201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이 열리기도 했다. 그가 설계했던 건축물들도 요즘 들어 재조명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종로 '삼일빌딩'이 있다. 삼일빌딩은 작년 말 SK D&D, 이지스자산운용, 벤탈그린오크(BGO)에 의해 리모델링이 완료됐다. 새롭게 탄생한 삼일빌딩은 1970년대 구축된 철골 보와 콘크리트 기둥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재정비되었다. 고층부는 기존의 상징적인 입면 구성과 커튼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보완했으며, 저층부는 열린 공간을 지향해 도로와 연결시켰다. 또한 남측 주출입구를 통해 삼일빌딩 내부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팔각형의 노출콘크리트 기둥인데 이는 삼일빌딩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원형을 남겨 삼일빌딩의 과거 50년과 미래 50년을 연결하고 있다.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사진제공=SK D&D

        

https://brunch.co.kr/@skip101/128


지난해 군산에 취재차 내려갔다가 '군산시민문화회관'을 보고 왔다. 군산시민회관은 1980년대 후반에 준공된 건축가 김중업의 말년 작품이다. 그간 건축가가 누구인지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최근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검토를 시작하면서 건물 안에 남겨져 있던 김중업의 설계도를 찾았다고 한다. 군산시민문화회관은 한때 군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추억 하나씩은 있는 장소였으나 지난 2013년 운영이 중단된 후 8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다가 지난해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군산시와 건축공간연구원이 2020년 6월부터 군산시민문화회관 재생사업 ‘프로젝트 거인의 잠’을 진행했으며, 'DIT(Do It, Together!) GRAND FESTA' 행사를 통해 군산시민문화회관이라는 장소가 가진 매력을 세상에 드러냈다. 최근에는 군산시민문화회관 사진 공모전을 열고 있기도 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중업이 설계한 삼일빌딩과 군산시민문회관이 오랜 침묵을 깨고 같은 시기에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https://brunch.co.kr/@skip101/93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이외에도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역 인근 담암빌딩이 몇 해 전 리모델링을 마쳤고, 안국빌딩도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김중업 건축가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계승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만난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을 표방하는 '집무실' 관계자는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유일한 상업시설인 '썬프라자(옛 태양의 집)'을 집무실 다음 지점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썬프라자는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쇼핑센터인데 현재 예식장으로 사용했던 3층이 비어있다. 집무실은 이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 검토할 계획이다.

대한성공회관 별관

참고로 집무실 1호점인 정동 본점인 대한성공회관별관도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이다. 집무실 공동 창업자인 조민희 로켓펀치는 이 사실을 몰랐다가 최근 발견했다고 한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그리고, 대형 부동산 회사부터 젊은 스트타업 창업자들, 로컬에서 활동하는 이들까지 여러 주체들이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뻔 했던, 그대로 사라질뻔 했던 공간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계승하고 있는 움직임이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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