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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Feb 12. 2021

코로나가 이룬 혁명_베를린 클럽 '베르크하인'

 갤러리로 재탄생한 테크노의 성지 by 김수민(독일 FHP 재학)

'서울 프라퍼티 인사이트(SPI)' 뉴스레터에서 소개하는 글입니다. 기고자인 김수민 씨는 연세대 산업디자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독일 Fachhochschule Potsdam(FHP)에서 제품디자인 석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3년째 거주하고 있으며, 앞으로 SPI를 통해 베를린의 매력적인 공간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SPI는 곧 공식 론칭을 앞두고 있습니다. 론칭 전까지는 SPI 뉴스레터를 통해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자에 대한 소개는 브런치를 참고하세요=>https://brunch.co.kr/@soomiinism


코로나가 이룬 혁명_갤러리로 재탄생한 테크노의 성지 

- 클럽 Berghain 베르크하인 -

 

예술가들을 위한 도시, 베를린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 (Berlin ist arm, aber sexy.) ” 2001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베를린의 시장이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남긴 유명한 슬로건이다. 비록 그 이후 인구가 몇배로 늘면서 가난하지만 섹시했던 도시 베를린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바뀌었고, 더이상은 그때처럼 물가가 저렴한 곳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채로운 매력이 가득한 젊은 도시이다. 독일의 수도이자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중심지, 유럽에서 가장 힙하고 쿨한 도시, 유럽 일렉트로니카의 성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자유와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도시.. 유럽의 실질적인 수도로 부상하면서 이처럼 베를린을 수식하는 단어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베를린은 유럽에서 아뜰리에, 스튜디오, 워크샵의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이후, 도시의 주요 시설들이 모두 동베를린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서베를린은 거의 모든 시설을 새로이 지어야 했고, 그것들이 통일된 이후에도 남게 되면서 다른 도시에 비해 문화적 시설이 많아진 것이다. 베를린의 예술가들은 언제나 예술이 소외된 장소를 찾아내는 것에 능숙했다. 그들은 오래된 건물과 폐허가 된 공장들, 텅 빈 주차장처럼 버려진 것 같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몇년 간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전세계의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국제적인 예술 중심지로서 주목받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STUDIO_BERLIN
RIKRIT TIRAVANIJA, Untitled (Morgen ist die Frage), 2020 (in situ installation). Studio Berlin _ B


나이트클럽과 현대미술관의 만남, 스튜디오 베를린 Studio Berlin

 그러나 2020년 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장악하면서 계획되어 있던 거의 모든 전시회와 공연, 페스티벌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미술관과 박물관, 클럽, 공연장들은 문을 닫아야 했으며, 예정되어 있던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변환되었고 이것은 앞으로의 미래에서 물리적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특히 베를린의 전설적인 테크노의 성지라 불렸던 거대한 클럽, 베르크하인은 실존 위기에 처했다. 엄청난 규모의 장소와 수십 명의 직원들이 소속된 이 곳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3월 이후부터 락다운으로 인해 클럽은 6개월이 넘도록 강제 폐쇄 상태가 지속되었고, 매 주말마다 광란의 파티를 하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하던 곳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요함과 적막감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가운데 클럽 베르크하인은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잠룽보로스의 컬렉터 카렌과 크리스티안 보로스 부부와 함께 손잡고 2020년 9월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오픈했다. (현재는 락다운으로 인해 다시 닫힌 상태이다.) 베를린 아트위크를 기념하며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118명의 사진, 조각, 회화, 비디오 등의 다양한 작품들이 1000평 가량의 클럽 공간 전체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소식이 발표되자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과는 별도로 오직 그 장소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티켓이 날개돋히듯 팔리기 시작했다. 


Berghain_코로나 이전의 베르크하인 전경 ©Michael Hübner
미로같은 베크르하인의 내부. 하지만 이역시 주기적으로 바뀐다. via Techno Moves


전설적인 테크노의 성지, 클럽 베르크하인 

본래 화력발전소였던 베르크하인은 베를린 동쪽 지역인 Kreuzberg 크로이츠베르크와 Friedrichshain 프리드리히스하인의 경계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 지역의 이름을 따서 산의 숲, 산림이라는 의미의 Berghain으로 이름지어졌다. 2004년 노버트 토르만과 마이크 튜펠레에 의해 설립된 이 클럽은 ‘테크노의 성지’ 라 불리게 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 중 하나가 되었다. 1953년에 지어졌다가 1980년대에 폐허가 된 이후 에너지 회사인 Vattenfall에서 임대하고 있었지만 2011년부터 클럽이 소유하게 되었다. 클럽의 전반적인 인테리어와 실외 공간은 베를린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Studio Karhard 스튜디오 카하드가 리모델링을 맡아 수행했다. 원래의 공간이 발전소였던만큼 메인 댄스홀은 18미터 높이의 거대한 천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전체 공간은 약 1500명의 손님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공간의 크기 자체가 웅장한만큼 압도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내부재는 강철과 콘크리트가 주를 이룬 심플하고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 주기적으로 공간의 인테리어를 자유롭게 바꾸기 용이하도록 했다. 전체 공간은 약 1500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서, 건물의 절반은 클럽, 나머지 절반은 전시회나 다른 문화 행사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어왔다. 클럽 외에도 회사는 Musik-Label Ostgut Ton 오스트굿이라는 뮤직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금융법원에서 베르크하인에서의 행사가 문화행사로 간주된다는 판결 하에 공식적인 문화기관으로 인정받아, 부가가치세 대신 할인된 세율을 지불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유럽 최대의 테크노 수도로 유명한만큼 약 280여 개의 클럽이 있는 베를린에서도 베르크하인은 최고 수준의 음향시스템과 특유의 개성, 자유로운 분위기로 2009년 DJ 매거진의 세계 클럽랭킹에서 1위에 선정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입장 규정부터 내부 시스템까지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입장하려면 몇시간이나 줄을 서야 하는 데다, 입구에서 도어맨들이 손님들을 아주 주관적인 기준으로 엄격하게 선발하기 때문이다. 거절당하는 이유 또한 전혀 알려져있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흔히들 “베를린의 가장 단단한 문”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클럽 내부에서 손님들에게 최대한의 자유와 개인적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해 사진 촬영이나 비디오 녹화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직접 다녀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부 공간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아무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닌데다, 입장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쉽지 않기 때문에 영국의 한 일간지에서 ‘베르크하인에 입성하는 법’이라는 기사를 실을 정도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며 선망과 동시에 악명 또한 얻게 되었다. 

이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낮과 밤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는 채로 보통 사흘밤을 지새우며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종종 유명한 배우, 가수, 모델이나 아티스트들이 손님들과 직원들 사이에 몰래 섞여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레이디 가가, 키아누 리브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연을 열거나 몰래 방문했다는 목격담 또한 들려오기도 했다. 


보로스 재단의 카렌과 크리스티안 보로스, 큐레이터 율리엣 코테 Photo- Max von Gumppenberg
잠룽보로스 © Foto_ NOSHE

코로나가 이룬 혁명 - 전설적인 테크노클럽과 예술계의 협력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규칙 또한 깨지고 있다. 베를린에서 가장 단단한 문이었던, 오직 문지기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테크노의 성지를 이제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방문할 수 있다. 물론 예약을 하는 것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이전보다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모든 프로젝트의 시작은 베르크하인의 운영자들이 잠룽 보로스(Sammlung Boros) 의 컬렉터 부부에게 전시를 제안하면서 이루어졌다. 본래 베르크하인 측에서는 보로스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지만, 보로스 부부는 아이디어를 한층 더 발전시켜 이 전시가 코로나19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는 문화예술공간과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으로써 새로운 기회가 되길 원했다. 잠룽 보로스의 대표이자 유명 광고기획자인 크리스티안 보로스는 “베를린의 문화생활이 아직 살아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라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잠룽 보로스는 아트컬렉터 크리스티안 보로스의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된 현대미술갤러리이자 컬렉터 본인이 거주하는 집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로 지어졌다가 독일이 분단된 후에는 지하감옥으로, 통일 이후에는 베르크하인의 전신인 테크노클럽으로 쓰였던 벙커 건물을 개조해 현대예술작품들로 채웠고, 작품들을 보관함과 동시에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미 폐쇄되었던 벙커를 전시공간으로 만든 경험이 있는 데다, 아트컬렉터로서 베를린에 살고있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잠룽보로스 측은 기획단계부터 아티스트들에게 계획을 공유하고, 예술가들로 하여금 더 다양한 동료들을 소개하도록 제안했다. 

이것은 예술과 사회의 현주소와 변화를 되돌아보고, 베를린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클럽과 문화예술공간, 예술가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 간에 코로나유행병을 넘어선 강한 연대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시에서 나이트클럽을 후원한다고? 

아무리 공식적인 문화기관으로 인정받았다고 할지라도, 클럽은 클럽이다. 그런데 시에서 클럽을 후원한다면?  그 어떤 도시에서든 문제 제기와 논란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시에서는 잠룽보로스가 투자한 금액과 같은 약 25만 유로를 베르크하인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러한 배경에는 베를린의 경제와 예술산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부터 클럽과 파티는 필연적으로 예술과 관련되어 왔다. 오늘날 베를린이 국제적인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전세계의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떠오른 것과 동시에 클럽 문화로 유명해진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동안 베를린의 클럽 산업과 문화예술 분야는 베를린의 경제 번영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해왔으며, 통일 이후 베를린의 이미지를 국제적인 도시이자 유럽의 실질적인 수도로 변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매년 1300만명의 관객과 젊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던 베를린의 클럽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락다운이 발표된 이후부터 감염의 위험 가능성이 큰 공간으로 전락하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상당 수의 클럽들은 정부지원이나 클럽 애호가들의 기부로 파산은 면했지만, 이또한 그저 일시적인 유예일 뿐이라고 클럽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를린 시가 단지 도시의 문화예술사업의 회복을 위한 이유뿐만 아니라 베르크하인을 단순한 클럽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장소로서 인정하고, 이러한 장소에 대한 보존과 활동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지원을 결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DIRK BELL, LOVE (site specific installation). Studio Berlin _ Boros Foundation, Berghain, Berlin 2

테크노의 성지에서 세계의 자유를 외치다 

지붕에 설치된 “Morgen ist die Frage, 내일은 질문이다”라고 씌여진 배너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태국 예술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야 Rirkrit Tiravanija의 작업으로, 미국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의 음반에서 가져온 것이다. 주변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눈에 띄도록 큰 사이즈로 설치되었으며, 이것은 지난 몇달 동안, 그리고 이후의 몇달 동안 베르크하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요약한 것이다. 내일이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듯 이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의 느낌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베를린의 클럽과 예술계종사자들이 지난 몇개월간 논의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르크하인은 세계의 자유를 위한 장소입니다.” 기획자이자 컬렉터인 크리스티안 보로스는 말했다. 현재의 제한된 상태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코로나 시대의 이러한 협력은 매우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의 운영자 노버트 토르만은 컬렉터들에게 베를린과 같은 곳에서, 특히 베르크하인에서 우리가 단지 백인, 이성애자의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그 무엇보다도 베를린의 다양성을 강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첫 발표당시 85명이었던 아티스트는 118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는데, 카타리나 그로스나 올라퍼 엘리아슨과 같은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아티스트들은 뒤로 살짝 물러나 더 다양하고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에게 더 큰 공간을 내주었다. 공간의 특성상 전시용 조명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예술가들 중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으며, 장장 3개월의 기간에 걸쳐 준비되었다. 메인 홀, 댄스플로어, 파노라마 바부터 복도, 흡연구역, 화장실, 그리고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블랙룸까지도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지만, 예전처럼 사진 및 영상촬영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모든 것을 디지털로 접할 수 있고, 또 지금처럼 코로나19가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며 모든 경험이 온라인 세상으로 변환되어 가는 시대에서 물리적인 공간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증명할 영리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파티가 열리게 된다면 제대로 즐기고 축하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재로서는 코로나19의 상황이 언제 끝나서 파티가 언제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전시는 무한지속될 예정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studio.berli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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