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삼일빌딩을 둘러본 후 아는 분께 삼일빌딩을 리모델링 한 건축설계사무소 원오원의 최욱 소장님 소개를 부탁드렸다. 생각보다 약속은 빨리 잡혔는데 일정을 잡기 위해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정말 바쁘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만나기 전 살펴본 원오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프로젝트에서도 분주함이 느껴졌다. 원오원은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제품 디자인, 그래픽, 출판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영상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실제 만나서 얘길해보니 월화수목은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금토일은 바닷가에 지은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도 그 분주한 와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오전 11시부터 점심까지 두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쭤봤다. 최욱 소장님은 5월께 팟캐스트에서 모시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이다. 그전에 오늘은 최욱 소장님과의 짧은 대화를 전하고자 한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니 계속해서 궁금한 점들이 생겼고 질문이 이어졌다. 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금요일 뉴스레터에 이 이야기를 담아도 되겠냐고 소장님께 여쭤봤고 소장님께 허락을 받아 쓰게 된 글이다.
원오원에서 건네준 커피
원오원 사무실 앞 풍경. 원오원 사무실은 독립문에서 연세대 방향으로 넘어가는 금화터널을 나오자마자 바로 오른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봉원고가차도 옆이다. 사무실 안에서 바라보면 봉원고가차도가 원오원 사무실을 대각선으로 나누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또한 사무실 뒤편으로는 안산 끝자락의 여유가 느껴지는 풍경이, 사무실 정면으로는 고가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분주함이 느껴진다.
참고로 원오원은 광화문에 위치한 이마빌딩 인근에도 '도무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판권을 사온 건축 잡지 '도무스(Domus)'를 제작하는 곳이다.
원오원 건축설계사무소가 위치한 동네
다음은 최욱 소장님과 나눈 대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여쭤봤는데 그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삼일빌딩을 계기로 만났기에 김종선 선생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누군지 아는 분이지만 깊은 인연까지는 없다고 했다.
건축가 최욱
-건축가가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했는데 목수라고 적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편한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였어요. 자동차 디자인, 무대 감독, 사진 작가, 영상이나 디자인을 만드는 직업 등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 앞에 나서기는 싫어하는 성향이지만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했어요. 건축가가 그런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 고등학교 때는 독일 뮌헨에 있는 유명한 무대미술과를 가려고 했어요. 근데 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에서 2년을 공부해야 해서 들어간 게 홍익대 건축과 입니다. 이탈리아에는 영화를 찍으러 갔는데 영화학교가 없어 들어간 게 베니스 건축하교 입니다. 근데 베네치아는 장소에 대한 독특한 감수성을 익힐 수 있는 곳입니다. 인공의 땅에 만들어진 도시이고, 건축은 시간을 축적하는 작업이고 시간을 이해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부분들을 볼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뒤의 활동은 어땠나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는 군 제대 후 '장건축'이라는 곳에서 1년 8개월을 일했어요.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설계한 곳입니다. 당시 한 대기업에서 설계 사무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향후 5년 내에 인원을 50명까지 늘려달라고 했었어요. 근데 그렇게 되면 5년 뒤에 제가 나이가 너무 많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걸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그래서 당시 같이 제안을 받은 선배랑 따로 나와서 파트너십으로 일을 했어요. 그리고 IMF 때 사무실을 나와서 여기저기 2년여 동안 여행을 다녔습니다. 당시 시 제 나이가 37살이었는데 건축을 계속할지, 아니면 말지 고민을 했죠."
-여행 후에 건축을 계속하기로 결정을 하신 건가요.
"결정을 못 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책을 한번 써보라는 권유를 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삼청동에 사무실을 내고 책을 쓰려고 했는데 사무실을 내자마자 일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아직도 책은 못 쓰고 있습니다."
*당시 건축설계사무소의 이름은 '스튜디오 최욱'이었다. 급하게 지은 이름이었다고 한다. 후에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바꿨다고 한다.
-'원오원'이라는 이름이 독특한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원오원 플래닝'이라는 후배가 운영하는 그래픽 사무실 이름에서 따왔어요. 이름에 개성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기초반이라는 의미도 있고, 도상항적으로 대칭이기도 하고요."
-건축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제가 작업한 공간이 편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예쁜 것 보다는 쾌적한 공간을 추구합니다. 담백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려고 해요. 실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면 트렌디하고 디테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부분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편하고 과하지 않은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 건축, 공간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것 10가지를 생각해봤어요. 여행가는 것이나 책보는 것 등 전부 다 일상과 관련된 것들이더라고요. 나열해보니 어찌보면 되게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죠. 저는 일상이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만 루틴은 습관이지 일상은 아닙니다. 습관적이지 않은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추구하는 건축, 공간 형태애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형식을 통해서 구현하려고 해요. 다만 한국인의 삶이라는 것이 한국인만의 삶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요.
"요즘은 나의 마지막 장소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큰 설명 없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다음 세대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어요.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예를 들게요.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고, 전 세계 곳곳에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형식적인 공간이라도 있어야 지속됩니다. 공간이 주는 메시지가 명확한 우리 만의 공간(사옥)을 짓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