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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Jun 06. 2019

메모광일 필요 있나.

어렸을 적 교과서에 실린 메모광이라는 글을 읽다가 생각을 기록해 두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려 어둠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읽는 순간나는 평생 이런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뭐하러 그렇게까지 메모에 집착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켜서 메모를 적는 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로 담아두고 있다. 노트에 연필로 두서없이 적어두기도 했지만 요즘은 갑자기 떠오른 문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폰 메모란에 우선 한 줄을 적어둔다. 나중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짧은 문장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통해 좋은 글을 쓰려는 의도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하나씩 글로 만들어둔다. 굳이 생각을 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메모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들어오는 생각을 잊지 않고 기록했다가 나중에 보다 깊이 생각해보고 고찰하기 위해 적어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공분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독서를 목표로 설정하고 읽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왜 생겼는지를 알려주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이다. 양가감정에 대한 내면적인 이야기나 개인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철저한 분리가 되는 이유에 대한 생각들을 여유가 되는 어느 시점에는 해보기 위한 것이다. 꾸역꾸역 하나씩 다 써보기는 하겠지만, 실제 현실에서 글을 적는 것은 많은 시간이 들기에 막상 이렇게 긴 글을 쓰려면 시간을 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냥 되는 때 하나씩 적어보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짧은 글이 대부분이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는 글밥을 길게 쓴 적이 없었다. 길면 두 세 문단이지 A4 몇장짜리 글을 써 본 적은 없다. 아, 몇 번 있긴 했지만 그런 글들은 페이스북에는 어울리지 않는 포맷이었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어울리지)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글을 거의 올리지 않기에, 길게 써서 올리고는 싶으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신경 쓰이기는 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려댔지만. 


생각이란 건 하기 나름이라서 이런저런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다 보면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마음속에 훅 들어오는 생각들이 있다. 그러면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짧게 기록하게 된다. 나는 그게 어느 순간 일상이 되었다. 학교 선생님은 메모광 이야기를 하면서 메모를 하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였지만,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귓등으로 들었을 것이다. 메모가 필요하면 할 것이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 굳이 모든 사람이 메모광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메모를 오래 하다보니 좋았더라라는 간증을 듣고서 나도 해보고 싶다, 메모 덕후가 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제대로 해 낼 수가 없다. 억지로 잘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꼴이 될 뿐이다. 하여 자기 계발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르짖는 것이 메모를 하며 노트를 하라는 의견인데, 나는 그걸 반대한다. 메모보다는 일상의 사소한 습관을 조절하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뭔가를 의지적으로 배우기 전 삶으로 들어올 구석을 만들어 두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저녁 식사를 거하게 먹고 케이크를 더 먹으려고 하면 위가 스스로 늘어난다고 한다.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메모를, 노트를 할 필요성이 아니라 삶에서 메모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공간이 조금만 있어도 일상으로 메모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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