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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Nov 05. 2020

글쓰기, 일기 쓰기, 그리고 생각 쓰기

어린이는 일기 쓰는 걸 죽도록 싫어하여 밤만되면 죽상이 되었다. 얼마전 저녁에도 혼자서 낑낑대며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일기를 쓰고 있길래, 일기를 다 쓰면 내 글쓰기를 갈켜주마 하였다. 그 사이 나는 만두를 튀겨먹을 작정으로 후라이판에 기름을 두르고 군만두를 만들다가 대실패를 하여 만두가 종잇조각이 되었다. 어찌됐건 대실패한 군만두를 간장에 식초, 고춧가루 챱챱 넣은 맛간장에 군만두를 담궈서 일기를 쓰던 권이와 나눠먹었는데 그 사이 어찌어찌 일기는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기를 읽어본 나는 단순한 시간순의 나열조차도 이 어찌 어색한가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고 곧바로 '일기를 쓰며 만두를 먹었던 상황'에 대하여 글쓰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의 주된 목표는 무언가 의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타의 모범이 되는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각을 탐구하고 관찰하여 그것을 글로 적어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질문을 하였다. "아버지가 처음 준 것이 무엇이냐" 아들이 답했다. "만두껍데기였습니다." "그 상황을 기억해서 한줄로 적으라." 어린이는 한줄에 그 내용을 적어내려갔다. 나는 다시 물었다. "만두는 어떠하였느냐" "만두는 피가 얇았습니다. 그리고 뚜껑이 열려있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만두피가 바닥에 붙어버려 떼어내니 만두피 한쪽이 후라이팬에 통째로 붙어서 뚜껑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어린이는 이걸 한 줄로 적어내려갔다. 이런식으로, 만두를 먹기위해 진행했던 상황을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나누어 질문을 했고 질문을 할때마다 어린이는 척척 잘도 적어 나갔다. 간장에 대한 묘사, 아빠가 일기 쓰기에 집중하라고 간장을 찍어서 권이 입에 만두를 넣어준 것에 대한 묘사, 그리고 혼자서 만두를 먹겠다고 하다가 만두를 간장에 빠뜨린 것까지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나갔다.

어린이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아홉 줄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얼굴에 무척 뿌듯한 홍조를 띄었다. 작성한 글은 사실 처음부터 읽어보면 이게 뭔소린가 싶게 맥락이 맞지는 않았지만 지금 글의 구성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 머리 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추상적인 장면을 글로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 세상의 어떤 산해진미보다 중요했기에 생각을 관찰하는 훈련을 해보게 된 것이었다. 자고로 글쓰기가 두려워지지 않으려면 머리속에 있는 걸 그대로 꺼내놓는 연습을 오랫동안 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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