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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May 28. 2021

일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배운 일

나는 당위성이 성립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가볍게 차이나는 것들이야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고 시간과 노력으로 메꾸면 해결이 가능하지만 근본적인 당위성에서부터 충돌이 일어나고 흔들리면 하나로 흘러야할 일의 맥락이 모두 흐트러진 게 보이니까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한심하다는 뜻은 아니고, 언제 이 맥락을 다 맞출까 싶은거다. 이렇게 첫돌부터 잘못 쌓은 일이 제대로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아니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잘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장점 하나가 살짝이라도 벗겨지면 전체가 다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 이유로 컨설팅이 들어와도 대부분 당위성 얘기부터 하게 된다. 


과거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되는대로 일을 하다가 말다가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꽤 치명적이어서 하루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뭔가를 제대로 끝낼 수는 있는 사람인걸까?' 수주 받은 홈페이지 제작도 정말 힘들게 힘들게 만들어서 제공했다. 급한거 틀어막지 않으면 당장에 큰일날 상황들의 연속이었지만 뭐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을수는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러다보니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 공부 잘 해서 일 잘하는 기업에 들어가 일하는 법을 배웠다면 더 나았을까 싶지만 내 머리를 생각해보건데 이해력 부족으로 그런 일은 못할 것이 자명했다. 하여튼 일을 차곡 차곡 말아먹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갔다. 일을 잘못하면 그게 그대로 나에게로 돌아왔는데 혼자 오는 게 아니라 다들 어퍼컷 한방 정도는 가지고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 나를 이리저리 두들겨 팼다. 그러니 가드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6개월전에 했던 일이 나를 이지경으로 만들다니, 2년전에 결정했던 것들이 이렇게 큰 손해를 입히다니.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주먹구구로 진행되던 사업의 면면이 모두 그렇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즉흥적인 상황 인식과 좋아보이는 것을 좇는 힙한 느낌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얕은 결과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몸빵을 하면서 한 단계 두 단계 일처리 하는 방법을 배웠다. 


일이라는 것이 고유의 방법과 과정이 있기에 새로운 것을 하려면 하나씩 배워야만 한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 없이 일에 대한 경험이 실력으로 나타날 뿐이다. 온통 몸으로 배운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해왔던 일에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면 몸이 본능적으로 그걸 먼저 안다. '아, 안 되겠구나. 아, 되겠구나' 그러한 직감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일종의 나만의 통찰이다. 물론 내 직감이 맞냐 틀리느냐는 상관이 없다. 일이라는 게 어떻게든 풀리려고 하면 잘 되는거고 잘 될거 같은데도 전혀 안 먹히기도 하고 그런거니까. 대신에 잘 될수도, 안 될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잘 되면 좋은 경험을 쌓는거고 잘 안 되면 조금 더 좋은 경험을 쌓는거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케이스를 학습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쪽으로 몸을 돌려 부딪히는 편이다. 아는데도 굳이 가보고 점검하고 확인하는 습성을 갖게된거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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