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8시간씩 일해도 나아지지 않은 이유

by 윤현민

한창 일을 열심히 했을때는 하루에 18시간씩 일했던 적도 있었지만,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밀려오는 일을 쳐내는 것만으로는 현상유지 밖에 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뒤로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뒤쳐진다는 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뒤쳐졌던 것이다. 시종일관 그랬다.


진짜 이상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하건 말건 성과가 똑같았다는 거다. 뭔가 잘못된걸 알았는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을 18시간씩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안 되는 걸 해야되는 막연함이 더 견디기 어렵고 결과가 형편없는 것에 대해 좌절감이 더 크다. 몸을 갈아서 일을 하는 건 상관이 없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오직 성과였다. 좋은 매출, 좋은 상품, 좋은 콘텐츠를 업데이트 하는 것도 모두 성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시장의 판도도 못 읽겠고 읽는다고 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안목이 서지를 않고 늘 그렇게 하듯 관성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거 없는거 가리지 않고 다 해야했다. 이것저것 다 하다보니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하고는 있는데 확신이 들지 않고 뭘 더 해야하는지 그만둬야 하는지도 모른채 계속 일만 하고 있었다. 뭘 해야할지 모른채 되는대로 하는 건 눈감고 벼랑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가야되니까 가는 것 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지만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내 수준보다 일이 더 커졌던거다. 거대한 산 바로 앞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때는 안목을 더 키우는 수밖에는 이 상황을 이겨낼 수가 없다. 시도하는 족족 망하거나 성과가 거의 없다는 건 잘못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깨달아도 해결책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기술과 실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고와 마인드셋의 문제인거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브랜드도 배우고 책도 읽고, 글도 끊임없이 쓰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러 다녔다. 책은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읽었다.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하게 되었고 선택은 어떻게 내리는지 궁금하게 되었다. 마케팅 책들을 읽다가 말았던 이유가 (통하지도 않을) 잔기술로 돈을 번다고 떠벌렸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벌 수도 있지만 롱런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마케팅은 결국 사람으로 흐르게 되어 있고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인문학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후에는 다수를 상대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넘어가고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 그 후로는 더 좋은 안목을 가진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생각의 충돌에서 안목이 생겨난다. 주장하고 우겨서 이겨내는 경쟁이 아니라 비교, 분석, 평가하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내가 속해있는 업계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할 줄 알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건 그거대로였고 실제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 더 중요했다. 온라인 마케팅이라고 해서 하나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온라인은 더욱더 많은 오해가 생기므로 더 섬세해야 한다. 급해서 만들었던 허접한 이벤트나 기획들이 소용 없었던 것은 이런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에 사람 사귀는 법을 조금 더 많이 익히고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좋다.


성과가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면 과정은 무시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성과는 성장에 필요하고 과정은 학습에 필요하다.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여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성장하는 기업이 언제나 과정 중심이어서는 안 된다. 결과물은 형편없는데 과정에서 얻은 학습에 이것만으로 족하다고 자위할 것인지는 스스로를 되물어보면 된다. 그래도 되면 아직 성장하는 기업인거고 안 된다면 결과가 필요한 기업이다. 그런데 이건 과정에서의 성장이 어느정도 궤도까지는 올라가야 된다. 그 수준에서의 이야기다.


충분히 숙성된 과정을 만들기 위해 좋은 안목이 필요하다. 좋은 안목과 마인드셋이 있다면 결과는 따라온다. 어떻게든 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나오게 되고 운이 좋아서 정말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는데 의도치 않은 성과는 요행일 뿐이다. 요행을 줄이고 실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하루 18시간 업무는 거의 대부분 쓸데없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지만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안목을 꾸준히 넓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수준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어차피 허접한 골방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으로는 뭘 해도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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