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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Apr 05. 2022

글쓰기의 의도


  우리의 글쓰기에는 의도가 없다. 아니 가장 큰 의도가 있다면 오직 하나, 순수하게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저 생각을 하고 종이나 노트에 글을 남기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 흐뭇할 수 있는 삶으로 가꿔가는 것이다. 이런저런 비싸고 유명한 식물을 옮겨 심는다 해서 예쁜 정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신경을 쓰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행위다. 식물을 옮겨 심으며 물 주고 오랜 시간 가꾸는 즐거움은 모른 채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만으로는 예쁜 정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가꾸는 즐거움을 느끼고 발견하지 못한다면 글쓰기의 결과만을 탐닉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글은 쓰지 않으면서 좋은 글이 나오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쓰려거든 우선 삶이 글쓰기로 젖어들어야 한다. 


  약치듯이 3주 만에 글쓰기가 훌쩍 자란다거나 이번에는 기필코 작가가 되도록 해드리겠다고 말하는 광고들을 볼 때면 글쓰기의 영혼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과정 속에 더 많이 숨어있을 수는 있으나 핵심을 한 마디로 홍보하는 글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읽을 수 없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글쓰기라는 것이 몇 주 만에 완성되는 그러한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글 쓰는 인생의 첫 시작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런 수업을 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어보는 것이 좋다. 글쓰기를 나의 일상으로 처음 초대하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 인생도 글쓰기 수업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글쓰기 수업은 글로 밥 먹고 살아가는 것에 관한 내용이 주였는데 그 수업을 통해서 뭔가 그럴듯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도 아니고 삶에 있어 그 수업이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글쓰기 수업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과제로라도 마무리하는 글을 써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과 글 쓰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글쓰기 수업을 하기 이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서 사투를 벌였다. 그리 대단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글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부유하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생각을 담거나 의도를 온전히 글 속에 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블로그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쓰던 글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생각이나 주장이 담기기 시작하니 블로그 글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글을 써보고는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작한 게 글쓰기 수업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사실 그 수업이 그 물꼬를 틔어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들을 사모으고 읽으면서 글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 중에는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것에 관한 책, 문학 창작에 관한 책,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책 등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 책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중요한 책은 에세이 쓰는 사람들의 생각에 관한 책이었다.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들을 많이 읽으면서 작가들이 처음에 글을 어떻게 쓰게 되었고 어떻게 글 쓰는 실력이 늘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찾은 책이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 쓰며 사는 삶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글 쓰는 태도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계속 쓰는 것, 그냥 쓰는 것, 생각하지 않고 쓰는 것 말이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다. 지금은 심심하면 아무 데나 펼쳐보는 그런 책으로 옆에 두고 있다.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읽어보니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방식은 거의 다 비슷했다. 그래서 되든 안 되든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사실 내면에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이 매일매일 글을 쓰게 만들어 주었다. 마무리만 못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멋있는 문장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더 좋은 교훈을 제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머릿속을 흘러 다니는 생각의 묶음이나 글자를 하나씩 채집해서 글자로 옮겨 넣었다. 머릿속에 있는 모양 그대로 글자로 뜨개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 들어와 잠자기 전에 페이스북에 혹은 노트에 매일매일의 생각을 글자로 집어넣었다. 내 글을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내 생각을 글자로 읽는 것도 별로 중요하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매일매일 글자를 써넣는다는 사실이었다. 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일기를 쓰는 게 아니고 내 생각을 한 문단으로 짧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느새 글쓰기는 내 일상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글을 완성하겠어!'라는 식으로 마음을 야무지게 먹거나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도 없었고 비장한 각오도 없었다. 각 잡고 쓰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하게 아무 때나 글을 썼다. 먹었던 간식에 대해서 쓰기도 하고 누구를 만났을 때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간식은 이내 만들어준 사람에 대해서 생각나게 했고 그 사람의 평소 말투도 떠오르게 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은 점차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한 생각들을 잘 채집하기만 하면 되었다. 생각이 잠깐 떠오르면 나중에 쓰기 위해서 아이폰 메모장에 주제를 담아두었고 그걸로 나중에 글을 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이러한 태도를 가지자 정말 사소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려면 그냥 신발을 신고 나가서 달리면 된다. 글쓰기도 그냥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한 줄을 써도 글이니까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일상에 조금씩 묻어있게 글을 쓰는 것까지 가보는 거다. 


  그래서 (일단) 우리의 글쓰기는 의도가 없어야 한다. 일상에서 대화하듯 글을 쓰는 게 먼저다. 작가가 되기 위한 꿈을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고 멋있는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그전에 글쓰기를 사랑해야 하고, 일상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의 태도를 갖추는 거다. 그렇다고 순수주의에 입각하여 글쓰기가 본질적으로는 순수해야 하며 그 외의 모든 이익적인 행위는 나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쓰는 인간이 되자는 거다. 그렇게 되고 난 이후에 뭐가 되든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정원까지 가꿔주고 관리해줄 능력이 스스로에게 넘친다면 물론 얼마든지 작가로 활동하고 그 이후에는 무얼하든 뭐가 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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