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목 Apr 17. 2022

음식을 잘 하면 자부심이 생긴다.

  요즘 꽂혀있는 책은 단연 에세이와 요리책이다. 그중에도 매일매일 하루에 한 페이지씩 정독하는 책은 요리책이다. 2020년 1월에 처음 집으로 들어와 쇼핑몰 마케팅이나 콘텐츠 제작을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주부의 삶을 시작하니, 요리라는 것이 너무 생경해 내 상상 속에 있던 맛있고 진귀한 맛의 찌개와 반찬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들어도 맛없는 것은 먹고 싶지 않았다.   


  "설탕을 한 스푼이나 넣는다고? 제정신이야?" 책을 깊이 묵상해도 될지 말지 모를 상황에 요리 연구가들이 적어둔 정확한 레시피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면서도 정작 실행할 수 조차 없는 실력이라는 걸 아는 데는 불과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요리는 비율의 예술이었다. 내 비율은 엉망이었고 무슨 이유로 젓갈과 진간장을 넣는지도 몰랐다. 결혼 전에도 물론 몇 년간 혼자 자취를 하였지만 그때는 잘해 먹는 것에 단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배고파도 밥 해 먹기가 귀찮아서 건너뛰거나 과자나 음료수로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 음식이라는 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라는 되지도 않는 통찰을 얻게 되었던 어느 날, 설탕을 가지고 넣으니 마니 하며 내면의 갈등이 폭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기타를 잘 배우는 이유는 시키는 대로만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래야 했다.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를 찾아보고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했다. 권이에게 이거 저거 보여주면서 뭐 먹을까 고민을 했다. 당장 권이와 둘이서 겨울 방학을 보내야 했으므로 점심시간에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하루하루가 실전이었다. 권이가 좋아하는 동네 식당에서 이것저것 사와 먹기도 했지만 집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자 유튜브를 쉴 새 없이 보았다. 한 번 요리를 해봐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매번 동영상과 레시피를 펼쳐놓았다. 적어도 수십 번은 해야 안 보고 할 수 있게 되었다. 김치찌개도 된장찌개도 마찬가지. 기본을 만드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어서 매번 맛이 조금씩 엇나갔다. 그 살짝의 차이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먹어주었다. 그렇지만 사소한 그 하나의 디테일을 해결하고 싶어서 요즘에는 유튜브보다는 요리책을 들춰보는 편이다. 연남동에서 중고 서점을 할 때 가지고 있던 요리책이 10여 권 있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뭘 먹을까 고민할 때 책을 뒤적거리면 언제나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들을 펼쳐보고 하나씩 해먹어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엊그제는 김치말이 국수를 하게 되었는데 핵심 재료가  '냉면육수'였다. 슈퍼에서 파는 그 '냉면육수'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이것은 라면 끓이기보다 더 쉽지 않은가! 나는 신나게 달려 냉면 육수를 사 와 냉동실에 넣고, 김치를 잘라 양념을 넣어 버무린 후 소면을 삶아 권이와 둘이 앉아 유튜브를 보면서 신나게 먹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요일을 보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