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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Sep 20. 2015

몸살의 추억

어묵 국물의 신화.

  대학교 다니던 시절, 나는 일생 일대의 몸살에 걸렸다. 가장 심하게 앓았던 몸살이기에 너무나 또렷이 그때의 통증이 기억난다. 교회의 오후 예배가 끝나고 나는 방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엄마는 방에 들어와 아프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약을 사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그 몸을 이끌고 약을 사러 갔다. 엄마인데, 아들이 끙끙 앓는데 약을 사다주지 않다니. 엄마는 나를 강하게 키웠다.


  약국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제일 멀었다. 지금 이 순간 걷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은 골목 모퉁이를 돌면서 본능적으로 다가왔다. 약국까지 갈 수 있을까. 그렇게 수십번을 벽에 기대고 한참을 쉬면서 약국에 도착했다. 걸어서 5분 가량 걸리는 길인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가는데만. 엉덩이의 근육통이 굉장했다. 이때를 기억하면 나는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있을 듯 하다. 한 발을 내 딛기가 힘들었으니까. 몸은 구부정했고 머리를 떡져서 뜬게 영락없이 환자다. 그럼, 난 환자였지. 약을 사고는 다시 그 길을 걸어 와서 집으로 들어갔다. 약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나는 다시 며칠을 끙끙댔다. 


  나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감기에 자주 걸렸다. 역시 대학교 시절 나는 시험기간이었다. 내일 시험이 오전 9시였는데 오후쯤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상황을 일찍 간파하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한 번 앓으면 회복하는 데 보통 2-3일, 길면 일주일도 넘어갔다. 이번 시험은 망했구나 싶었다. 평소에 시험 공부란건 전무하게 하니까 내일 시험도 공부를 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출석은 해야 할 듯 하니 오후부터 집에 쳐박혀 있던 것이다. 


  저녁때 친구가 친구들과 함께 어묵 국물을 사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을 냠냠 먹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는 새벽 2시쯤 몸이 거의 회복되는 기적을 보았다. 나의 어묵 국물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친구에게 전하고 새벽의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친구와 같은 수업이었으므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은 망했다. 공부는 평소에 하는거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체크했다. 하루 여섯시간씩 자면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몸 관리는 필수였다. 그래도 대학시절보다는 몸이 많이 좋아졌으므로 (그때는 정말이지 쇠꼬챙이 같았다.) 예전만큼 앓는 것이 길지는 않았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너무 개운했다. 목이 아픈 것 빼고는. 2-3일 전부터 권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도 옮은 것 같았다. 목이 굉장히 아팠는데 그 외의 컨디션은 완전히 정상이었다. 커피를 끊고 어깨의 곰도 이미 사라진 상태라 더 없이 좋았다. 그러나 밥을 먹고 씻기 시작하면서부터 몸이 살짝 맛탱이가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근육통의 시작이다. 안돼. 권이는 목감기 이후 정상이던데 나는 왜 목감기 이후 몸살인거냐. 


  점심땐 장모님 생신이셔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맛있는 양념걀비를 뜯고 모두 집으로 모여 생일 파티를 했다. 나는 점점 절정의 맛탱이를 자랑하며 침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저녁이 다 되어 일어나서 아내에게 어묵국을 요청했다. 없다길래 동네 마트에 이 몸이 직접 걸어가서 사왔다. 그리고는 밥은 안 먹고 어묵국만 두 그릇을 들이켰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쥐죽은 듯 엎드렸다. 잠 한 숨 때리고 몸이 좀 회복되나 싶은데 아직은 아닌듯 하다. 열이 나고 있어서 초가을의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남방을 꺼내입고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이 글을 한편 쓰니 조금은 정상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무거웠던 머리도 정 자세로 앉으니 두통이 사라지고 있다. 역시 컨디션은 자세로부터, 몸살은 어묵국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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