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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Sep 22. 2015

데이터 상실의 시대

억지로 제한을 두는 삶.

  데이터가 없이는 이제 무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쓴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결제를 한다든지, 아이폰에서 앱을 켜면 뭐  하나되는 게 없다. 뱅글뱅글 로딩 화면이 돌다가 경고창이 뜬다. 네트워크에 접속을 할 수 없습니다. 내지는 로그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양이 기르기 게임은 잘만 돌아가는데.

  당연히 페이스북도 할 수가 없다. 데이터가 없을 때 페이스북은 안 해도 된다. 그냥 안 하면 되니까  별 문제가 없다. 페이스북은 데이터가 있을 때나 누일 수 있는 사치다. 월초에는 이 사치를 충분히 누리다가 월말이 되면 빈궁해지므로 모바일에서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이때는 당연히 PC로 하지. 이를 위해 별도로 데이터를 구매하지는 않는다. 목매지는 않으니까. 밖에 나와 있을 땐 휘휘 둘러보면 재밌고 쓸 말도 많아서 아쉽긴 하다. 사소한 나의 인간관계는 데이터 소진과 함께 안녕. 돈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이 없을 땐 인간관계도 끊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다. 데이터와 돈이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나의 데이터의 한계는 한 달에 1.5기가인데 더 이상 늘릴 생각은 없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쓰고 필요하면 조금 더 충전해서 쓴다. 나에게 필요한 경우란 딱 한 가지가 있는데 내비게이션을 써야 할 때이다. 한 번은 일요일에 아내가 일을 해야 해서 회사에 데려다 주고 권이와 나는 코코몽 놀이터를 간 일이 있다. 신나게 두 시간을 놀고 회사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 이미 데이터 상실의 시간이었다. 네비가 작동하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라? 되지도 않게 고속도로 진입이 되었다. 아내의 회사는 제2 롯데월드 근처였는데 고속도로로 진입하니 롯데월드가 멀어져만 갔다. 하는 수 없이 첫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모르겠다 싶어 푯말만 보고 당당히 찾아가 주마 했지만 대실패.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권이는 어느 틈엔가 뒷자리에 안전벨트를  메고 헤드뱅잉 졸음 삼매경이었다. 권이를 깨우자 이내 울어버린다. 엄마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엄마에게 가야 한다. 그래서 데이터를 100메가 샀다. 그 덕분에 페이스북을 조금 더 할 수 있었지.

  제한과  무제한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제한이 있다는 가정하에는 만족함이 크다. 반대로 말하면  이해될 것이다. 무제한이라고 했는데 제한이 있었다면? 이것은 필경 분노가 어마어마하다. 데이터가 무제한이면 (꼭 데이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페이스북에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드라마도 100편씩 다운받아 놓고는 안 본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제한 없이 많다는 것은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군대에 있을 땐 그렇게 부모님께 효도한답시고 설쳐대던 애가 제대와 더불어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게 된 열린 효도의 길에 접어들자 부모님의 참견이 미치도록 싫은 것과 같다. 


  냥이들도 귀찮게 하면 나를 피해 다닌다. 아니 귀찮게 하지 않아도 일정한 간격이 있다. 안고 싶어도 그러기가 힘들다. 강아지들처럼 매일 뛰어고 놀아달라고 아양을 부리는 것도 좋지만 고양이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데이터가 필요 없는 고양이 기르기 게임은 한 번 신경 쓰는데 10초 걸리지 않지만, 고양이들이 가져다주는 황금 멸치는 왠지 집착하게 되네... 이거... 


  그래서 나도 억지로 1.5기가를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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