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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만 Aug 29. 2021

이제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옛날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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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파트 올라간다."


며칠 전부터 자꾸만 꿈에 어렸을 때 살던 동네가 나왔다. 도깨비가 살 것 같은 무서웠던 골목길. 아이들과 함께 돌 던지며 놀던 집 앞마당. 사나운 개를 피해 뛰어가야 했던 빨간 대문 집. 바지를 걷어 아이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던 동네 개울. 학교 가다 만나는 네 잎 클로버와 큰 대추나무.

"엄마, 옛날에 살던 동네 기억나?"

"왜? 가보고 싶어? 거기 많이 변했을걸?"

"변했어? 어떻게?"

"뭘 어떻게 변해 재개발 들어가서 큰 도로가 생겼지. 왜? 한번 가보고 싶어?"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옛집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시골길.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꺼내어 맞춰보는데, 도무지 들어맞지가 않는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여기 기억 안 나? 여기가 예전에 우리 고추밭 있던 자리야."

엄마는 큰 대로 옆에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는 그 자리가 옛날 우리 밭이라고 했다. 여름만 되면 엄마 손에 끌려 한 손에는 미숫가루를 탄 주전자를 들고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밭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태양볕 밑에서 엄마는 쪼그려 앉아 바짝 약이 오른 고추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나도 엄마를 따라서 빨간 고추를 바구니에 담았다. 금방 이마에 땀이 흐르고 옷이 축축해졌다. 먼지로 코가 간지러워 손으로 쓱 하고 문질렀는데 매운 고추 향에 눈물 콧물 흘리며 울었던 추억이 있는 고추밭.

"옆에 봐봐. 저기가 시장 있던 곳이야. 너 기억나? 여기만 지나가면 액세서리 파는 가게 앞에 딱 붙어서 핀 사달라고 어찌나 떼를 쓰던지"

"어 기억나. 그 옆에 콩국수 파는 가게 있었잖아. 거기 콩국수를 엄마가 진짜 좋아했는데"

"기억나지. 그 할머니 돌아가셨잖아. 10년 정도 됐을걸?"

이제는 흔적도 없는 시장길을 바라보며 엄마와 나는 옛날 기억들을 펼쳐놓았다. 옛 시장 길은 번쩍이는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엄마, 우리 집은?"

넓은 흑 마당이 있고 시멘트 담장이 있던 한옥집. 대문이 잠겨 있으면 주변에 있는 돌을 딛고 훌쩍 담을 뛰어넘곤 했던 우리 집. 마당에 누런 똥개가 반갑게 맞아주던 우리 집. 장독대에서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났던 우리 집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 있던 자리는 시꺼먼 아스팔트 대로가 차지하고 있었다.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쌩쌩 달릴 때마다 흙먼지가 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엄마. 여기가 우리 집 앞마당이었는데 겨울만 되면 다 같이 앞마당에 모여서 김장했던 거 기억나?"

"그럼. 그때 니 할머니가 온 동네 다 퍼준다고 김치를 담벼락 높이까지 쌓았잖아.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코가 아파 햇고춧가루가 얼마나 맵던지"

엄마는 옛 생각이 나는지 눈물을 찔금 흘렸다. 매웠던 고춧가루가 떠올랐던 걸까? 아니면 무서웠던 시집살이가 생각나서 울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진 우리 집과 지나버린 추억이 그리워서였을까?

이제는 사라져 버린 내 집.

같이 놀자며 대문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내 옆집 아이는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마당 기둥에 고무줄을 걸어놓고 함께 놀던 윗동네 아이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없어진 내 동네가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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