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입니다. 제가 좌우명처럼 기억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의 여부는 이 능력을 얼마나 잘 발휘하는가에 달렸죠.
한 때 저는 ‘김장준’이라는 사람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성공하겠다는 열망이나 목표 의식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해질 자격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직업을 바꿨습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성장하면서 스스로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습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며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항상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대통령, 경찰, 혹은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수많은 꿈 중에 제가 선택한 것은 바로 야구선수였는데요. 오랫동안 LG 트윈스의 팬이었다는 사실도 진로를 정하는 데에 한몫을 했지만, 그것보다는 화려한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컸습니다.
유년시절에는 그렇게 야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에 참여해야 했고, 때로는 코치와 선배들에게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힘들고 피곤했지만 야구선수로서 성공한 제 모습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야구선수가 된 이후의 인생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계약금도 받을 수 있었고, 연봉도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동년배의 친구들이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할 나이에 저는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요. 부모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누구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찍 성공한 탓인지, 야구선수가 된 이후에는 이전만큼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죠. 야구선수로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7년간의 선수생활을 뒤로하고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로서의 삶을 접고 난 후, 저는 목적지가 없는 내비게이션과 같았습니다. 평생을 목표로 삼은 꿈이 없어지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야구선수 준비 시절보다 은퇴 이후가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명확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남들처럼 잘살고 싶고,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야구 이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고요. 답답하고 막막해서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쯤 문득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계를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남들이 많이 한다는 이런저런 일에 손을 댔습니다.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성, 또 제 능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졸 출신으로 내내 운동만 했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도 않았고요. 그저 당장 시작할 수 있고, 쉬워 보이는 것만 찾아서 시작했던 일. 그런데 이런 일을 통해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재정 컨설턴트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위험한 일이죠. 하지만 급여가 높고 신체만 건강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작업 현장에서 지인들을 만날 염려가 없다는 점도 그 일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는 성공하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아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것조차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조선소에서 일하던 시절이 생각나 문득 사진첩을 찾아봤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더군요. 생각해보면, 사진 한 장 찍을 새도 없이 기계처럼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잠깐 쉴 때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헬멧을 옆에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조선소 현장 근무라는 직업의 귀천을 따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꿈도, 희망도, 어떤 목표 의식도 없이 사는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렇게 방황을 거듭하다가 재정 컨설턴트로 일하던 선배를 만나게 됐습니다. 야구선수 시절에 만난 운동 선배였는데요, 선배는 제게 재정 컨설턴트라는 직업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과거에 금전 관리를 할 줄 몰랐던 저는 새로운 분야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제 나이가 31살이었습니다. 취업을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사 이후 팀장님과 미팅을 할 때에는 금융계와 제가 맞지 않는다며 자신 없다는 말을 했었죠.
그때 팀장님은 저를 붙잡고 회사의 모든 FC들이 각자의 꿈과 열정만 가지고 입사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건을 먼저 따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인가를 본다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때 저는 야구선수로서 은퇴한 이후로 처음으로 가슴이 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재정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금융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시험도 통과해야 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 힘들고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삶의 목표가 생기니 내가 가진 열정 자체가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일을 시작한 이후로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요정 할머니와 12시 전에는 꼭 집에 들어가겠노라는 약속을 하죠. 저는 반대였습니다. 12시 전에는 절대 귀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제 자신과 했습니다. 당장 조금 힘이 들더라도 내 인생을 위해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후 11시에 일을 마치면 한 명이라도 더 고객을 만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힘들다기보다는 행복했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재정 컨설턴트로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고,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도 하나하나 실행할 수 있었죠.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해졌습니다. 유럽 여행도 다녀오고,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는 나머지 미션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렇게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생의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정 컨설턴트로서 제가 세운 목표와 꿈의 크기만큼 스케줄을 조절해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인생을 실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명확한 삶의 목표가 없었다면 저는 언제나 지난 날만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왜 내가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누군가가 저를 나무 타기 실력으로 평가해주길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제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은 나무 타기가 아닌데 말이죠.
아직도 저는 제가 성공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성장 스토리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언제나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만은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슴 뛰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성장하는 것의 기쁨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가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 의지, 그리고 명확한 목표의식. 이것이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