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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30. 2024

기녀 출신에서 중국미술대학 교수가 된 화가, 반옥량

드라마 <빨간머리 앤>을 보았다. 이 드라마는 인종, 계급, 결혼 여부,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과 혐오를 영리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근래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남의 나라 드라마 소재에서 찾아볼 것도 없이 몇 해 전 출간된 문학동네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문학 작품 심사에 선정된 7편의 단편은 각각 다른 소재였는데, 그러면서도 공통으로 페미니즘, 퀴어, 여성의 연대 등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댓글은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안 읽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주제로 기획한 단편이었다면 이런 류의 비난이 적었을 텐데, 독자 입장에서는 '수상 작품 수록집'이라고 읽었는데 유사한 주제의 소설만 등장하니, 이런 주제 위주로만 선정했냐는 비난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상은 당시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마다 수상 목록에 오르는 단편들은 지나고 보면 당시 사회를 조명하는 척도가 된다.


해마다 쏟아지는 논문 주제 역시 시대 분위기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중국 근현대회화사> 수업을 함께 듣는 대학원생 중에 '중국 미술 속의 여성화가' 관련한 논문을 쓰는 이가 있었다. 주제 발표 시간에 반옥량이라는 화가를 조사하여 발표했다. 청 왕조 말기에 태어난 반옥량은 기녀로 살다가 프랑스 미술대학 유학을 가고 돌아와서 미술대학 교수까지 한다. '기녀'와 '대학 교수'라는 단어 조합이 한 인물의 인생사에서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참 뜻밖의 일인데, 그 변화의 중심에는 반찬화라는 그녀의 동지가 있었다.


반찬화는 일본 유학생 출신의 신지식이었다. 상해 세관으로 부임한 그는 지역 유지들이 마련한 술자리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옥량을 만난다. 옥량은 지역 유지들이 성 상납을 위해 불렀던 기녀였다. 반찬화는 그녀를 환속시키기 위해 첩으로 삼는다. 이후 교육을 받지 못해 글자도 모르던 옥량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서 문맹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는 옥량에게 그림의 재능이 있음을 알고, 미술교육도 시키고 결국 프랑스 유학까지 조력한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최고 정점은 반옥량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미술대학 교수에 이르는 부분이다. 인생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녀에게 붙은 '기녀 출신', '첩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린 나체화 작품들은 전시장에서 찢기고 비난받는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가서 이국에서 생을 마친다.


반옥량을 '기녀 출신'이라고, '창기 출신'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온당한가. 옥량은 어린 시절 그녀의 부모를 잃었고, 그녀를 데리고 간 삼촌은 아편 중독에 빠져 결국 옥량을 기방에 넘긴 것이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그녀의 과거는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옥량이 자신의 인생에서 변곡점을 맞이한 계기는 반찬화와의 만남이었다. 반찬화는 옥량에게 교육을 통해 그녀가 온전히 혼자 설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한 인간이 침몰당할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에는, 이렇게 상대의 고통을 알아보고 헤아리는 마음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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