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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30. 2024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착해요"라는 말

대학 후배 혜정은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종종 "언니, 이게 해 볼래요?"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온다. 한참 아이를 키울 때, 이 시기에는 후회 없이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육아서들을 읽으며 나는 어떠한 육아를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며 좌절할 때, 혜정이는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여행 작가 오소희의 책이었다. 육아는 어떤 아이를 만들겠다는 결과가 아니라, 아이도 나도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며 나는 숨통이 트였다.


그런 혜정이가 얼마 전부터 교과 모임에 나가고 있다며 "언니, 답사 같이 신청해 보지 않을래요?"라고 물어왔다. 신규면 모를까, 나이 마흔 다 되어서 새로운 교과 모임에 나간다는 건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혼자였다면 엄두를 못 냈을 모임의 답사에 혜정이를 따라 첫발을 디뎠다. 그곳에는 전국에서 모인 역사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휴직을 내고 대학원을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근무했던 학교의 교직 문화 때문이기도 했다. 공립 중등 교사의 경우 5년마다 새로운 학교로 배정을 받는다. 새 학교로 발령받아 인사를 갔을 때, 내 직속 부장은 전입교사인 내게 학교 자랑을 한다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되게 착해요. 아무도 토 다는 사람이 없어요.".


'토 달지 않는 착한 사람', 아, 저 정의는 누구 입장에서의 정의일까. 어떠한 공간이든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곳에서 논쟁은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과연 평화롭고 평등한 조직 문화를 가진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의 부장과 한해를 같이 지내며 '의견 제시'와 '토 다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해야 했다. 이미 전산화되어 있는 행정 영역에서 관성적으로 여전히 비전자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 교직원 연수 때, 그런 비전자 서류는 이제 우리 부서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하면 좋겠다고 하자 나의 부장은 "하던 대로 그냥 해요"라고 답했다. 이 서류는 왜 만들어야 할까, 이 사업은 왜 여전히 존재해야 할까에 대해 궁금해하면 "여태까지 해 왔으니까", "작년 공문서 그대로"라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기본적으로 그 일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떠한 효과를 기대할 것인지, 어떠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이 사라진 채, "이전에 해 왔으니까"라고 하면, '교육'이 아니라 '행사'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교사와 교사가 만나는 누군가의 직장이기도 하다. 상하의 직급 체계가 있는 곳이며, 행정과 교육 철학과 맞물려 끊임없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와 "그것이 어떻게 교육적인가?"라는 질문이 부딪히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근무했던 당시 학교에서는 그러한 질문이 '토 다는 것', '착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지나고 보면, 모든 학교 문화가 그런 것이 아닌데, 그때 그곳이 그랬던 것뿐이다.


혜정이의 제안으로 나간 교과 모임에서 사람들은 질문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 역사 교육의 지향점은 어때야 하는지, 과거사 교육에서는 어떠한 점을 염두하고 수업 설계를 해야 하는지, 기존 교과서 서술의 한계는 없는지, 그것의 대안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TV에 나오는 대중 역사 강사들처럼, 어떻게 내용 지식을 잘 정리해서 역사 사실을 한눈에 파악하게 할 수 있는지나 기자재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호기심을 어떻게 유발할 수 있을지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모임의 선생님들은 역사라는 학문은 명쾌하게 결론이 정리되는 성질의 장르가 아니며, 다양한 논쟁점이 존재하며, 역사 수업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교사 조직 문화도 들여다봐야 한다. 질문하는 교사를 불온시하는 학교 조직 문화에서 질문하는 학생을 어떻게 키울 수 있겠는가.


교과 교사 모임에서는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우리가 같은 직장에서 행정으로 얽혔다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리 조직은 다른 곳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각자 교육과는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행정 업무에 치인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잠시 떨어져, 너와 내가 지금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자리는 귀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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