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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31. 2024

같은 대상을 보았으나 똑같이 보지 않았다.

  대학 선배가 언젠가 자신의 학교 선생님과 함께 학생 체험활동 답사를 꾸려서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충남 지역 답사에서 간척 사업으로 토지가 된 서산 일대를 둘러보고 인근의 보원사지에 들르는 코스였다. 지리 선생님은 이 지역이 원래 갯벌이었으면 간척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하더란다. 그런데 역사 교사인 자신은 한편 이거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건가 싶더란다. 그리고 답사 장소를 이동하여 보원사지에 도착하여 이번에는 본인이 남아 있는 5층 석탑의 조형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리 선생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건물도 남아 있지 않은 폐사지에서 어떠한 감흥을 느껴야 하는지 말이다.


  지리 교사에게 간척 사업지는 지형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고, 역사 교사에게 폐사지는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서로 교차해서 살폈을 때는 "뭘, 이거 보자고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각자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사물을 살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사 수업 시간에도 종종 그러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조선 회화사> 수업 때, 교수님은 산수화, 인물화, 영모화 등의 큰 주제를 중심으로 각각의 주제마다 여러 관점으로 쓰이거나 혹은 학회에서 '주거니 받거니' 한 논문들을 읽게 했다. 조선 회화사 속의 개념이나 작품과 관련한 논쟁을 살펴보게 하는 수업이었다.


  한 번은 진경산수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논문을 읽게 되었다. 각 논문의 관점이 다양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A 교수는 원래 전공이 사학, B 교수는 국문학, C 교수는 한문학, 뭐 이런 식이었다. 훗날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미술사로 했다 하더라도, 각자 학부 시절 전공의 흔적이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술사 전공자들은 사학과 출신들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작품을 끌어다 쓰면서 도구화한다고 비판했다. 사학 전공자들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파악한 거시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국문학이나 한문학 출신들은 온전한 작품 이해를 위해서는 그림에 함께 쓰여 있는 제시의 의미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 끝에 미술사 출신들은 작품의 본질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라도 다시 반박하고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중화사상의 탈피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한 줄로 소개되는 겸재 정신의 진경산수화 한 점으로, 종이 위에 칼자국 난무한 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감정학> 수업 때도 비슷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중국 고서화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감정가들'에 대한 논문을 읽었다. 학자마다 중국 회화 작품의 진품과 위조품 여부를 검증하는 기준이 달랐다. A 학자는 해당 작품에서 화가가 붓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묵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고 했다. B 학자는 고전 문학, 역사학, 문헌학을 활용하여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C 학자는 그림 속 표현된 건물의 건축이나 인물의 의복 도상이 해당 시기의 것인지를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제각각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가 있었다. 이러한 각각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의 출신 배경에도 맥락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화가의 화풍이나 기법을 봐야 한다는 A 학자는 본래 화가 출신이었으며, 그림을 문헌학적으로 고증해야 한다는 B 학자는 고전 문헌학 전공자였다. 그림 속 건축 도상을 봐야 한다는 C 학자는 건축 전공자 출신이었다.


  각각의 학문마다의 고유한 인식의 틀이 개인에게 체화되어 대상을 살피고 해석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미용실을 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머리 모양부터 눈에 들어오고, 귀걸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남들 귀에 걸린 귀걸이만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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