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술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연구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 1차 사료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전 시기 사회주의 국가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고 모아서 1차 사료를 수집하는 것부터가 연구의 출발이었다. 따라서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에 나 같은 석사생도 참여해 볼 만한 여지가 있었다. 근대 시기 이전의 문헌이나 유물들은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관계자나 교수가 아니면 직접 접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하지만 북한 미술 자료는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누구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근대 시기 연구보다 자료 접근성에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 시간에 모일 때마다, 서로 새롭게 어떤 자료를 찾아냈는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누군가 가져온 퍼즐 한 조각이, 또 다른 이가 가져온 퍼즐 하나와 만났을 때, 뜻밖의 어떠한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었다. 한 조각으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른 자료와 함께 있을 때 의미 있는 맥락으로 완성되기도 했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나는 북한 화가 선우담을 조사해서 발표했다. 나는 동기 안나 선생님이 기꺼이 내어준 자신의 퍼즐 하나를 자료 삼아 다른 자료와 연동되어 갖는 의미를 추론하고 발표하였다. 그 발표를 듣고 있던 홍성후 선생님은 두 자료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덧붙여주었다. 북한의 정치적 변화 상황이 반영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수업 시간에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는 이러한 탐색과 발견을 격려하는 교수님의 표정과 멘트 하나에 울고 웃는 대학원생들이 되어 또다시 자료를 붙잡곤 했다. 우리 모두가 좋아라 하는 교수님이기도 해서 더 잘하고 싶기도 했다.
역사 교사인 나는 교과서를 재구성해서 가르치는 일을 해 왔다. 역사학계의 다양한 논쟁 속에서 살아남은, 검증된 지식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교과서를 기본으로 삼아, 이를 어떠한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질문할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하지만 이때 대학원에서 했던 공부는 내가 사료를 수집하고 추론하여 역사적 사실을 생산하는 주체의 경험을 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뒤늦게 와서 제일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내가 공부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공부의 방식'을 맛보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