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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Feb 10. 2024

휘노게노브를 찾아서


  북한 미술 연구의 장점 중 하나는 당연하게도 우리말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경우 특히 한자 대신 한글을, 세로 쓰기 대신에 가로 쓰기를 해 와서 문헌을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별도의 어학 실력이 필요하지 않은 대신, 그들의 문헌에 언급된 외국 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탐색 과정이 필요했다.


"1949년에 쏘련 문화 대표단의 일원으로 래조한 화가 이·휘노게노브는 조선 미술가들의 작품에 대하여 구체적인 분석과 지도를 주었으며…. "


  북한 미술 잡지 <조선 미술> 1957년 판에는 북한 건국 일 년 후에 소련을 대표해서 방문한 한 소련 화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그는 누구이며 북한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를 알아내야 했다. '휘노게노프'에 대해 어떻게 조사해야 할까. 우선 발음을 다양한 영문 표기로 조합해 보았다.


phinogenof, phinogenov, finigenov, finigenof ...... 



  다음으로 이 단어들을 파파고를 돌려서 러시아어로 조합해 왔다. 그러자 финогенов이라는 표기의 단어가 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 구글이나 이베이 사이트 검색창에 финогенов라는 단어를 넣어봐야 했다. 그러다 이베이에서 1953년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그림 작품 책자 하나를 보게 되었다. 판매자는 책자 중의 일부 페이지를 올려두었는데 그곳에는 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1949년 중국 모택동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장면을 그린 스케치 본이 실려 있는 모양이었다. 화가가 당시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던 걸까. 이 정보만으로 이 작품을 그린 финогенов라는 작가가 북한 잡지에서 언급된 '휘노게노브'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북한 잡지에서 1949년 북한을 방문했다는 구절을 보아, 같은 해 중국을 방문했다면 인근의 북한도 함께 방문했을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10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작품집은 한 달 후 우리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배송지는 캐나다 토론토였다. 토론토의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1953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책자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그림책의 작가가 북한 잡지책에 언급된 '휘노게노브'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몇 장 넘기다가, 이 책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 휘노게노브의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림에는 북한 풍경을 그린 그림이 실려 있었으며, 그림 문양처럼 그려진 한글 글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케치 작품 아래 쓰인 러시아 글자는 파파고를 돌려 보니 <소련군의 북한 해방>이라 적혀 있었다. 소련 화가의 시각이 반영된 작품이었다. 그림의 전면에는 총을 메고 입성하는 소련 군대와 이들을 환영하는 조선인 무리를 배치해 두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이 장면은 1945년 해방 무렵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하지만, 1949년에 북한을 방문한 피노게노프가 이걸 어떻게 보고 그렸단 말인가. 화가는 그 당시 그 자리에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실제 장면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해방 무렵의 사진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구글 러시아 사이트에서 해방이라는 뜻의 러시아 단어 Эмансипация을 넣고 이미지 검색을 했다. 


  그러다 러시아 현대사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차 위에 올라타 있는 소련군과 이들을 환영하는 인물의 모습은 동일하였으나, 이 사진의 배경은 평양이나 원산이 아니라 중국의 하얼빈이었다. 사진의 제목은 '중국 하얼빈에 입성하는 소련군'이었다. 화가 피노게노프는 소련군이 중국 하얼빈에 들어섰을 때 이들을 환영하는 하얼빈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이를 조선인들의 모습으로 변형하여 그렸던 것이었다. 사진 속의 소련 노인은 그림에서 긴 수염과 상투를 쓰고 있는 조선 노인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인파의 뒷배경으로 그려진 옛 성문에는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해방 무렵의 북한 지역 성문의 사진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1947년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의주 남문에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피노게노프는 스케치화 한 장 안에, 북한이 누구의 덕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인지를 두 가지 포인트를 그려 표현하였다. 소련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김일성 또한 거기에 그 역할이 컸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피노게노프의 그림을 보며, <공공역사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파울이라는 역사학자의 지적이 떠올랐다.


"이미지가 일어난 일을 표현하거나 그것을 비추는 거울에 머물지 않고, 역사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향을 미치고 부분적으로는 애초에 역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역사학의 이해 밖에 존재해 왔다."


  피노게노프는 그의 스케치화에서 역사의 장면을 '재현'한 것에 머물지 않고, 관람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의도를 담아 '창조'했다. 1949년 북한을 방문한 소련 화가 피노게노프는 북한 화가들에게 역사적 장면을 화폭에 담아낼 때는 이렇게 필요에 따라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여 재구성할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북한 화가들의 작품을 해석할 때는 특히나 작가의 의도를 분석해 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거란 생각을 했다.


  한편, 캐나다 토론토의 얼굴 모를 판매자는 1953년에 발행된 이 소련 화집을 어떤 경로로 소장하고 있던 걸까. 그는 택배 상자 안에 손 글씨 메모를 함께 동봉해 왔었다. "Stay safe and Be well!", 내가 이 책을 구입한 2020년 봄은 코로나 시국일 때였다. '안전하게 지내!'라는 태평양 건너의 누군가 건네온 인사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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